의료진을 충원하기 위해 책정한 권역외상센터 예산이 실제론 행정직인 코디네이터를 채용하는 데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 수를 늘리자는 정부가 실제 응급의료 현장에 필요한 의사 채용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2019년도 예산 결산심사 자료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전국 권역외상센터에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 인건비 지원 등을 위해 지난해 653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의사·간호사 지원금 자체를 낮게 책정해 의료진 충원율은 70% 수준에 그쳤다. 복지부는 남은 의료진 인건비(141억원) 중 8억원을 코디네이터 17명을 추가 고용하는 데 집행했다.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결산심사소위에서 “의사를 채용하라고 준 예산을 가져다 국회 의결조차 거치지 않고 임의로 용도를 바꿔 행정 코디네이터를 증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복지부는 권역외상센터 의사를 지원하기 위해 책정한 예산 389억원 중 281억원만 집행했고, 간호사 인건비 예산 역시 142억원 중 119억원 정도만 썼다. 당초 의사 451명에게 임금 지원을 하겠다는 전제 아래 예산을 편성했지만, 의사 186명을 지원하는 데 그쳤다. 예산이 남게 되자 행정직인 코디네이터 인건비와 당직비 등 운영비 명목으로 돌려 사용했다. 이에 따라 당초 64억원가량이 편성됐던 운영비는 124억원으로 늘어나 집행됐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소위 회의에서 “실제 집행률 차이가 큰 것도 문제지만 근무 환경이 열악해 의료진 기피가 심한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역외상센터는 중증외상환자의 응급의료를 담당하는 곳으로 의료진은 24시간 격무에 시달린다. 일반 외과의사의 평균 연봉(2억원)에 비해 권역외상센터 의사 지원 단가(1억4400만원)가 낮아 의료진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국민의힘 의원들의 지적이다. 간호사 역시 일반병원 평균 연봉인 5000만~6000만원(3급 종합병원 일반간호사 기준)에 비해 정부 지원 단가가 4000만원으로 더 적다.

국민의힘 측은 권역외상센터 의료진 지원단가를 높여 예산 불용 사태와 무분별한 전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역외상센터 의사 인건비로 책정된 예산은 2018년 407억원에서 지난해 389억원, 올해 337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같은 기간 간호사 인건비 예산도 124억원(2018년)에서 92억원(2020년)으로 감소했다.

강도태 복지부 기획조정실장은 “인건비뿐만 아니라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전공의들이 외상센터에서 교육받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외과계 전공의 전문외상교육사업에 책정된 지난해 예산(5억3000만원) 중 실제 집행된 액수는 1억3000만원으로 집행률이 24%에 불과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