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예산 사용처를 임의로 바꿔 법적 근거가 없는 사업을 추진한 사례가 여러 건 지적됐다. 행정부가 ‘예산 돌려막기’를 하면서 국회의 예산심의확정권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14일 미래통합당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전국 권역외상센터에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 인건비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653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의사·간호사 지원금 자체를 낮게 책정해 의료진 충원율은 70% 수준에 그쳤다. 복지부는 이에 남은 인건비 중 8억원을 코디네이터 17명을 추가 고용하는 데 사용했다. 당초 의사 451명에게 임금 지원을 하겠다는 전제 아래 예산을 편성했지만, 의사 186명을 지원하는 데 그쳤다. 통합당 관계자는 “남은 예산을 제멋대로 쓴 것”이라고 지적했다. 코디네이터는 전문 의료인력이 아니라 의무기록 데이터 입력 등을 맡는 행정인력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강원도 산불로 피해를 본 기업을 ‘직접 보조’하기 위해 편성한 305억원 예산 중 180억원(59%)을 임의로 융자사업으로 전환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종배 통합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국회 승인도 없이 정부가 불합리하게 사업형식을 바꿔 산불 피해 기업을 두 번 울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도 ‘편법 돌려막기’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자문회의는 예정됐던 회의체 출범이 연기되면서 못 쓰게 된 임차료 등 이월이 불가능한 6억원을 일반용역비로 바꿔 사용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신재생에너지보급사업 예산도 논란이 됐다. 지난해 추가경정예산 편성 때 국회 논의 과정에서 100억원이 전액 삭감됐지만 산업부가 자체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해 오히려 315억원을 증액시키면서 국회의 심의권을 무력화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의장은 “올해는 불법 전용의 책임을 물어 재정규율을 재확립하는 원년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