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3년 전 주(駐)뉴질랜드 대사관 근무 당시 현지인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고위 외교관 A씨를 3일 직위 해제하고 귀국을 지시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외교부 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여러 가지 물의를 일으킨 A씨를 귀임 조치했다”며 “최단 시간 안에 귀국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A씨는 당분간 무보직 상태로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필리핀 총영사인 A씨는 2017년 말 주뉴질랜드 대사관 근무 당시 사무실과 엘리베이터에서 대사관 직원인 현지인 남성에게 세 차례 성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2018년 초 귀임한 A씨는 외교부 자체 조사를 받았으나 감봉 1개월 징계만 받고 얼마 뒤 필리핀 총영사로 부임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한국 정부의 비협조로 A씨에 대한 뉴질랜드 경찰의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항의해 왔다. 지난달 28일에는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며 사건 해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주뉴질랜드 대사관 직원에 대한 면책특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서면 인터뷰나 자료 제출 등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뉴질랜드 정부 측이 이를 거부했다”고 해명했다. 이 당국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양국 정부가 공식적인 사법 협력 절차를 밟는 게 바람직하다”며 “뉴질랜드 정부가 공식적으로 형사 사법 공조나 범죄인 인도 등을 요청하면 우리 정부도 협조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뉴질랜드 언론 등이 제기한 것처럼) 한국 정부가 A씨 개인에 대한 면책특권을 주장한 적은 없다”고 했다.

외교부는 이날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를 불러 A씨 귀임 조치 등에 대해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외교부는 뉴질랜드 정부가 언론을 통해 수사 협조와 관련한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전달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뉴질랜드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 등이 공식적인 (수사 협조) 요청은 안 하고 언론을 통해서만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또 한·뉴질랜드 정상 간 통화에서 A씨 문제가 이례적으로 언급된 데 대해서도 유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터너 대사는 이번 사안에 대한 뉴질랜드 정부 입장 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언급할 내용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