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사진=호사카 유지 교수 제공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사진=호사카 유지 교수 제공
일본 정부가 내부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강원도 평창군 한국자생식물원에 설치된 '영원한 속죄' 조형물에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일 관계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사진)는 1일 <한경닷컴>과 전화 인터뷰에서 "민간인이 민간 부지에 사비로 조형물을 설치한 것에 대해 일본 정부가 대응한다는 것은 외교적인 결례"라고 했다.

호사카 교수는 과거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전 주한 일본대사가 '문재인, 한국에 재앙'이라는 책을 썼음에도 한국 정부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점과 비교하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과잉 반응을 지적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주한 일본대사관 특명대사로 한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무토 전 대사는 지난해 여름 '문재인, 한국에 재앙'이라는 책을 일본에서 출간했다. 국내에서도 올해 4월 출판된 이 책에서 무토 전 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우방'이던 일본을 '적국'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 대통령을 '독재자', '재앙' 등으로 표현하며 한국 국민이 문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한국자생식물원 내에 건립된 조형물 '영원한 속죄'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한국자생식물원 내에 건립된 조형물 '영원한 속죄'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호사카 교수는 "민간인도 아닌 전 주한 일본대사가 한 나라의 지도자에 대해 모욕을 한 셈인데 한국 정부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원한 속죄' 조형물을 만든 사람이 '소녀상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있는 남성은 아베 총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데도 일본 정부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 정부가 과민반응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내부결속을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으로 해석했다. 호사카 교수는 "아베 총리 지지층인 우익세력이 '소녀상에 대해 반대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불쾌하다'는 반응을 내비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스가 관방장관은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조형물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한 나라 행정 수반에 대해) 국제 예의상 허용되지 않는 일"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호사카 교수는 "아베 정권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지지율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면서 "이 같은 분위기라면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66석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도 일본 현지에서는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베 신조 내각의 지지율은 보수 성향인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서도 30%대로 조사됐다. 요미우리가 지난달 3~5일 18세 이상 유권자 10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39%로 나타났다. 요미우리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 것은 2018년 4월 조사(39%) 이후 2년 3개월 만이다. 당시 아베 정권은 모리토모(森友) 및 가케(加計) 학원 스캔들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다수의 일본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도 30%대를 기록했다. 아사히 신문이 지난 6월 20∼21일 일본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31%를 기록했다. 특히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이들의 비율은 52%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공영방송 NHK가 같은 달 19∼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힌 응답자 비율이 49%를 기록해 아베 총리 재집권 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호사카 교수는 이번 조형물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조형물이 설치되는 이유는 아베 정권과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사죄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빌리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폴란드 유대인 위령비 앞에서 사죄한 것처럼 진정한 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