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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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부터 세종시로 내려가자.”

제1야당 미래통합당이 세종시라는 어정쩡한 행정도시로 인한 국가적 비효율을 바로 잡겠다며 이렇게 치고 나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앙정부가 권력을 틀어쥐고 인위적으로 나누는 사회주의식 균형발전이 아니라 모든 지역이 스스로 혁신주체로 나서는 새로운 차원의 국가발전 모델을 보여주겠다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명박 정부에서 행정도시 백지화 추진이 수포로 돌아간데서 볼 수 있듯이 어차피 원점으로 되돌리기 어려운 세종시라면, 또 정치적으로 뜨거운 이슈인 균형발전을 더 이상 특정 정파의 단골 메뉴로 놔둬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행정수도 이전 계획의 원조는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박정희 정부였다.
대선은 이미 시작됐다
제1야당 미래통합당이 제 역할을 못하니 슈퍼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더욱 거침이 없다. 재집권을 향한 집념, 어떤 불리한 상황이 와도 뒤집는 정치 기술은 무서울 정도다. “행정수도를 제대로 완성할 것을 제안한다.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 청와대, 정부부처도 모두 내려가야 한다. 이렇게 해야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여론이 어디로 흐를지 미리 다 계산하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수도 세종시’는 여당이 이미 대선을 향해 질주하고 있음을 상징적을 보여주는데도 우왕좌왕하는 야당이 안쓰럽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부동산 대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국민 원성이 높아지고,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니 급기야 내놓은 제안이 수도를 세종시로 옮기겠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말이 백번 맞는다고 해도 속으로는 무척이나 당황해하는 비판으로 들린다. 이른바 ‘아젠다 정치’로 여당의 단골 메뉴를 뺏어오며 의기양양해하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김 위원장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것도 수도권 인구 과밀을 해소하는 데 아무런 효력을 내지 못한 게 오늘의 현실”이라고 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왜 미리 여당이 말해온 지역균형발전을 ‘가짜’로 규정하고 새로운 차원의 지역발전 구상을 자신들의 아젠다로 가져오지 못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제1야당이 여당의 생각을 읽고 있다면 기본소득 보다 이게 먼저여야 하지 않았을까?

상대방이 수도 이전 카드를 들고나왔는데 부동산 잡기에 효과가 있니 없니, 정략적이니 뭐니 논란을 벌이는 것은 싸움의 차원이나 번지수를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은 것이다. 야당이 뭐라고 하든 수퍼 여당이 ‘행정수도완성추진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한 이상 공론화에 나설 것은 확실하다. ‘수도 세종시’를 대선까지 끌고가겠다는 얘기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 창출에 쓰였던 수도 이전이 문재인 정부에서 정권 재창출을 위한 또 한번의 결정적 카드로 쓰이지 말란 법도 없다.

이런 여당의 패를 정확히 읽은 야당 의원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당이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론을 왜 반대로 일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역균형발전에 민주당보다 더 강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장제원 미래통합당 의원) “개헌을 포함한 행정수도 이전을 공론화하는데 찬성한다. 국회의사당 이전은 헌법 개정 없이도 가능하다.”(정진석 미래통합당 의원) 불행히도 지도부의 노선은 이들과 궤를 달리하고 있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슈 앞에서 야당이 또 다시 허무하게 당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예감이 든다.
공공기관 이전, 대학 평준화, 언론 재편은 ‘덤’
여당의 노림수가 수도 이전에만 있을까? 때맞춰 노무현 정부 이후 10여년 만에 공공기관 2차 이전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국회와 청와대마저 옮기자는 판국이면 1차 이전에서 살아남은 힘센 공공기관들이 버틸 논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방은 환영 일색이다.

여권에서 지방대가 붕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심상치않다. 재조명받고 있는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또한 그렇다. “서울대학교를 프랑스 파리대학처럼 제1대학, 제2대학 식으로 같은 자격을 부여하면 굳이 부산에 있는 대학생이 서울에 와서 관악 캠퍼스에 올 이유가 없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과거 같으면 하향 평준화 논란이 거세게 일었겠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라나19) 사태로 온라인 교육이 대세가 돼버린 상황까지 더해지면서 통합론, 네트워크론이 오히려 힘을 얻을 공산이 커졌다.

대학 이전설과 관련해 김시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수도권의 대학들이 대부분 사립대라서 공공기관처럼 강제성을 부여할 수 없다” “서울대 등 법인화 국립대도 국가에서 강제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지금의 한국 대학은 국립대 사립대 할 것없이 정부의 규제와 예산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한군데도 없다.

청와대는 공영방송 KBS의 세종시 이전설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정부부처와 청와대, 국회까지 세종시로 간다면 미디어의 대이동도 불가피하다. 문재인 정부가 벼르고 있는 검찰개혁 다음에는 언론개혁이다. 언론개혁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광화문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며 불편해했던 거대 언론사의 지리적·물리적 이동이 겹치면 언론 재편까지 덤으로 주어질 지 모른다. 수도 이전이 박정희 때의 ‘안보론’이 ‘균형론’으로 바뀌었을 뿐, 집권 여당이 공공연하게 말해온 ‘장기 집권’으로 가는 핵심 프로젝트가 아닐까?
균형발전과 국가 경쟁력,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균형발전이 되면 국가 경쟁력이 더 높아진다.’ 정치적 단골 메뉴가 된 균형발전의 당위성을 말해주는 이 가설은 맞을까? 처음부터 ‘균형’에서 출발할 수도 없거니와 모두가 인정하는 ‘균형’을 달성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가설은 ‘검증 불가’다.

균형발전은 십중팔구 지리적·물리적 강제 이전이라는 하드웨어로 나타난다. 단기간에 눈에 보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드웨어라는 ‘동질적·정태적 균형’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가 더해져 ‘차별적·동태적 균형’으로 가야 나타나는 경쟁력 효과는 오래 기다려야 한다. 정치가 어디에 더 집중할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균형발전이 수도권 인구 과밀 해소는 물론이고 지역 발전에 실패해온 본질적인 이유다.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균형이 혁신의 동력을 앗아가면서 하향 평준화로 치닫게 되면 오히려 국가 경쟁력 추락은 불보듯 뻔하다. 문제는 이것이 지금의 정치인들이 재미를 다 본 다음에야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리적·물리적 균형으로 성공한 사례를 찾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정치는 늘 유권자를 속이려고 든다.
야당, 후폭풍을 그냥 쳐다만 볼 건가
“제1야당은 여당의 제안이 정략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자율과 분권의 정신을 담은 좋은 안을 만들어 수도이전 문제를 주도해야 한다.”(김병준 전 비대위원장, 미래통합당 세종시당위원장)

균형의 본질이 하드웨어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에 있다는 관점에 서면 이 발언은 핵심을 짚은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 위원장은 여당의 균형론은 겉으로는 자율과 분권을 말하지만, 실은 제대로 된 자율과 분권이 아니거나 가짜 자율, 가짜 분권에 가깝다고 본다는 뜻이다.

‘수도 세종시’는 과연 자율과 분권을 누릴 수 있을까? 경제수도로 만든다지만 졸지에 ‘천박한 도시’가 돼버린 서울시와 경기도는 수도권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수도 세종시가 또 다른 권력의 집중화를 가져온다면, 서울시가 여전히 경제적 자유가 없는 도시로 간다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일까? 다른 지역에서 봤을 때 ‘수도 세종시’나 '수도 서울시’가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느낀다면 수도 이전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일까?

과감한 규제완화를 통한 자율, 권력의 분산화를 통한 분권과는 반대로 국가주의 성향, 권력 집중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자율과 분권 없이는 개인, 기업, 대학이 혁신 주체가 될 수 없듯이 지역 또한 혁신 주체가 될 수 없다. 이런 환경에서는 어떤 ‘균형발전론’도 ‘허구’일 수밖에 없다. 야당은 피하지 말고 수도 이전을 둘러싼 아젠다 경쟁에 정면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냥 수도 이전이 아니라 ‘자율’과 ‘분권’으로 ‘국가 대(大)혁신’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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