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시장 성추문 의혹 대응으로 시정 혼선…추진 동력 재확보 절실
'정치인 시장' 보호막 잃은 서울시…보선까지 259일 과제 산적
전국 최대 지방자치단체인 서울특별시가 사상 초유의 시장 사망에 따른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된 지 2주가 됐다.

박원순 전 시장이 9일 극단적 선택으로 자리를 비웠고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권한대행으로 뒤를 맡았다.

서울과 수도권 2천만 인구의 일상을 책임지는 책무가 서울시에 있지만, 지금까지는 박 전 시장 관련 의혹 대응에만 집중하느라 다른 시정이 원활하지 못했다.

권한대행 체제가 내년 4월 7일로 예정된 보궐선거까지 8개월 이상 지속할 수밖에 없고 박 전 시장 관련 의혹 규명은 외부 기관의 몫이 된 만큼 서울시로서는 시정의 추가 동력을 얻어야 할 시점이 됐다.

◇ 9일, 그날 이후…혼돈에 빠진 서울시
박 전 시장은 10일 숨진 채 발견됐지만, 하루 전인 9일부터 서울시정은 사실상 멈춘 상태였다.

당정의 그린벨트 해제 요구로 시 간부들이 종일 회의를 이어가던 시점에 수장인 박 전 시장이 부재했다.

박 전 시장 사망이 확인된 뒤 권한대행 체제가 발표됐고, 박 전 시장 장례 일정이 이어졌다.

성 추문 의혹에 극단적 선택을 한 고인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하는 것이 옳으냐는 논란이 벌어지면서 상중에도 서울시는 조용하지 못했다.

발인이 있었던 지난 13일에는 피해자 지원 단체의 1차 기자회견으로 시 정무 라인과 비서실에 대한 의혹 제기가 한층 거세졌다.

이틀 뒤인 15일 시는 지원 단체 요구에 따라 '민관 합동조사단' 구성 계획을 발표했다.

애초 참여를 시사했던 단체들이 거부 의사를 보이면서 뜻대로 되지 않자 시는 조사단을 전원 외부 전문가로 구성하겠다고 했으나 이 역시 결국 무산됐다.

시는 지난 22일 지원 단체가 2차 회견에서 밝힌 바대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가 이뤄질 경우 협조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본청에만 4천명 넘는 인원이 근무하는 거대 조직이다.

외부 사업소를 합치면 1만명을 넘고, 25개 구청을 더하면 4만명이 넘는다.

조직도에 단 한 자리만 존재하는 시장의 빈자리는 컸다.

평소 현안이 있으면 앞장서서 시 입장을 밝히고 구체적 사안마다 생각을 제시하곤 했던 박 전 시장 특유의 일 처리에 10년 가까이 직원들이 익숙해져 있었기에 혼란은 더 증폭됐다.

더욱이 그는 고인이 됐어도 그와 관련된 의혹은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시는 지난 2주간 방향을 잃고, '조사 대상'이 진상 조사에 나서려 한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정치인 시장' 보호막 잃은 서울시…보선까지 259일 과제 산적
◇ 쌓여 있는 현안…일 많은 서울시
방향을 잃었다고 해서 1년 예산 40조원 이상을 쓰는 서울시의 일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당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은 여전하다.

격리자 관리, 동선 추적, 방역·소독 등 기존에 해오던 시민건강국 업무에 집단적 선제검사와 같은 새로운 일이 더해졌다.

코로나19로 불황이 길어지면서 경제정책실과 문화본부, 관광체육국도 바빠졌다.

연일 소상공인, 실직자, 한계기업, 예술인, 관광업계 지원을 위한 정책을 쏟아낸다.

안전총괄실은 마스크 등 방역 물자 비축에 총력을 쏟고 있다.

여름 장마가 시작된 뒤 풍수해·폭염 피해 방지의 중요성도 커졌다.

복지 전달체계 최전선에 있는 동 주민센터로 내려가는 공문도 많아졌다.

밑그림만 나온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는 정부, 시민사회, 지역주민 등 각계각층과 함께 논의를 계속해 나가야 할 과제다.

인천 수돗물 유충 사태가 벌어진 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지난해 '탁한 수돗물 사태' 이후 최고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그린벨트를 비롯한 주택, 나아가 부동산 관련 업무는 중앙정부보다 서울시 정책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도시·건축공동위원회, 도시재생위원회 등에서 매 순간 수많은 사람의 삶과 재산에 영향을 미칠 결정을 내린다.

전국 부동산 시장을 선도할 정책의 입안·설계·발표가 주택건축본부, 도시계획국, 도시재생실 등에서 이뤄진다.

흔히 서울시를 두고 '외교와 국방 빼고 다 한다'고 하지만 외교와 국방도 서울시와 관련이 있다.

방한한 외국 정상의 시청 방문은 드물지 않은 일이고, 지난 20∼21일에는 시청에서 육군 교육사령부가 참여하는 '메가시티 미래와 안보' 콘퍼런스가 열렸다.

'정치인 시장' 보호막 잃은 서울시…보선까지 259일 과제 산적
◇ 보궐선거까지 8개월여…외부 협력 절실
수장을 잃은 시로서는 이 많은 일을 원활하게 다루려면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등 외부의 협조가 절실하다.

박 전 시장은 언제나 대권 주자로 꼽혔던 인물이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업무추진 과정에서 그의 영향력을 활용했다.

중앙부처와 이견이 있을 때면 다수 시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민주주의적 정당성과 미래 잠재력을 모두 가진 시장의 힘을 믿고 버틸 수 있었다.

때로는 시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대신 싸워주기도 했다.

이제는 그런 보호막이 없다.

공무원 출신인 권한대행은 민주적 정당성이나 잠재력이라는 박 전 시장이 누렸던 무기가 없는 상태에서 현안을 풀어나가야 한다.

그 자신이 박 전 시장이 남긴 의혹과 관련해 조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여러 악조건에 처한 서울시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일단 서울시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2일 있었던 올해 첫 서울시-민주당 예산협의회에서 이해찬 대표 등은 시 정책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도 각 부처에 서울시와 협조를 강화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그린벨트 해제 여부를 놓고 격론이 벌어지던 중 문재인 대통령이 '보존'을 택해 서울시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최대한 협력해서 하루빨리 진상을 규명하는 동시에 시 본연의 업무에도 충실해야 한다"며 "이런 때일수록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