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북핵 문제는 위기→협상→잠정적 비핵화 및 상응하는 대북 지원→파국과 새로운 위기를 거듭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30년의 세월이 묘하게도 신흥 강대국 중국이 부상하는 시기와도 맞물립니다.

북핵 문제는 미·중 관계의 흐름에 따라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 구조가 형성됐음을 의미합니다.

미국과 중국은 북핵 문제를 다룸에 있어 자국의 세계전략,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전략적 관점에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북한도 전략적인 행보를 했습니다.

미·중 관계의 틈새를 잘 파고들어 끝내 핵보유국의 지위까지 오른 북한입니다.

그렇다면 북한 핵 문제는 앞으로 어찌 될까요.

흔히 북핵의 역사를 세 시기로 구분합니다.

1990년의 북핵 상황을 1차 핵 위기, 그리고 2003년 이후의 상황을 2차 핵 위기, 또 김정은 정권 이후 또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의 시기(통칭 3차 위기)를 말합니다.

미·중 관계의 틀 속에서 바라볼 때 이 세 시기는 각각의 뚜렷한 특징이 있습니다.

북한은 1980년대 말 사회주의권 몰락 속에서 핵을 통한 안전보장을 추구했습니다.

물론 핵 개발 프로젝트는 비밀리에 진행됐습니다.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해 북한의 비밀스러운 움직임이 포착됐고, 당장 핵사찰 압박이 북한에 가해졌습니다.

이른바 '추출된 핵물질 양의 불일치' 문제로 한반도에 핵 위기가 밀려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과 북한은 고위급 양자 협상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가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입니다.

이 시기에 중국의 역할은 제한적이거나 거의 개입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세계최강, 미국의 국력과 비교(세계은행 통계 기준)할 때 10%(GDP)에도 못 미치는 신흥 경제발전국이기도 했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여파가 밀려들 것을 우려하던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1992년 한중 수교는 북·중 관계를 악화시켰습니다.

미국보다 턱없이 약했던 국력에다 악화한 북·중 관계 속에서 중국은 북핵 문제에 개입할 겨를이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2차 핵 위기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의혹으로 제네바 합의 체제가 붕괴한 2002년 가을부터의 시기를 말합니다.

강경 조지 W. 부시 정부가 '악의 축'이라 비난하며 북한을 압박했습니다.

이라크 전쟁 이후 북한까지 손 볼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던 시기에 중국이 중재자로 나섰습니다.

그 결과 2003년 4월 북미중 3자회담을 거쳐 그해 8월부터 남북미 3국에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 참여하는 6자회담이 시작됐습니다.

2008년 12월 마지막 6자회담 때까지 중국이 의장국을 맡았습니다.

이 시기의 특징은 중국의 역할이 확대된 것입니다.

특히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미국이 주도하는 무역질서에 편입된 이후 중국의 경제는 욱일승천했습니다.

그 결과 2008년 중국의 GDP는 미국의 31%까지 성장합니다.

중국의 역할 확대는 북핵 국면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에 크게 의존해야 했습니다.

미국은 서구식 자본주의 질서에 순응한 중국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미국 내에서 일부 '중국 위협론'이 제기되긴 했지만, 미국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에 집중하기 위해, 그리고 아직은 국력 면에서 상대가 되지 못한 중국을 본격적으로 견제하진 않았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삼각관계'를 활용해 줄타기하던 북한은 6자회담이 무력화된 이후 핵 무력 완성을 위해 질주합니다.

김정은은 집권 직후인 2012년 4월 북한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했고, 2013년 4월에는 '핵보유국 법'을 발표했습니다.

2013년 2월 제3차,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 2월 장거리 미사일(광명성호) 발사에 이어 9월에는 제5차 핵실험을 단행하는 등 쉴 새 없이 핵 무력 완성을 서둘렀습니다.

국제사회의 저지 노력(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와 2321호)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전략 노선은 2017년에도 계속됐습니다.

북한은 2017년 9월, 6차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장거리 탄도미사일에 장착 가능한 수소탄시험을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핵무력 완성을 대내외에 선언한 겁니다.

당연히 세계 최강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라는 용어까지 동원하며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한반도에 다시 일촉즉발의 위기가 몰려든 것입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 갑자기 '평화의 봄'이 찾아오더니 김정은의 화려한 탑다운 정상외교가 펼쳐집니다.

2018년 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4차례, 문재인 대통령과 3차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차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1차례 등 총 10회가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화려한 김정은의 정상외교 뒤에 놓인 이 시기의 특징을 잘 봐야 합니다.

세계최강 미국과 도전국 중국이 벌이는 패권 경쟁이 바야흐로 현실화했다는 점입니다.

중국 혁명 5세대를 대표하는 시진핑 주석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겠다면서 '중국몽'의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건 트럼프 정부는 중국 봉쇄와 압박에 더욱 노골적으로 나섭니다.

이 모든 것이 중국의 급성장으로 인한 겁니다.

2018년에 중국의 GNP는 14조달러로 세계 2위에 오릅니다.

20조달러의 미국의 66% 선까지 성장한 겁니다.

향후 미·중 관계가 어찌 될 것인가를 놓고 세계적인 석학들의 견해도 엇갈립니다.

미국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나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 등은 주로 미·중 관계의 협력관계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점을 제시하지만, 그레이엄 엘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예정된 전쟁'을 통해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말합니다.

중국에서도 정비젠, 왕지스 교수 등은 '화평발전론'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옌쉐통 교수 등은 미·중 관계의 '전략적 경쟁'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중국 정부 고위 관료는 "이제 중국은 170년 전 아편전쟁으로 서구제국주의에 무릎을 꿇던 힘 빠진 호랑이가 아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미·중 관계의 향후 시나리오는 대략 3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좌절시키고 패권을 지속 유지하는 것이고, 둘째,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패권국으로 등극하는 것, 셋째, 미국 국력이 우월한 상태에서 중국의 위상과 역할이 담보되는 일종의 타협적 상황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시나리오를 그리고 계시는지요.

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공공연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북핵 문제의 성격이 변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견제하고 압박하는 데 있어 북핵 문제를 카드로 활용하려는 기색이 노골화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북한 핵 문제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극렬하게 표출된 사례가 바로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였습니다.

사드는 전장이 짧은 한반도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무기체계로 전문가들은 평가합니다만, 미국은 북핵ㆍ미사일 방어를 명분으로 한반도에 배치했습니다.

탐지범위가 2000km에 달하는 사드 레이더 AN/IPY-2를 중국 지근거리에 두기 위한 미국의 계획에 따른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987년 소련과 맺었던 중거리 핵전력 조약(INT)을 최근 파기한 미국의 행보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미사일 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지요.

아니면 중국을 위협할 새로운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일본이나 한국에 배치하면서 그 명분으로 '북한 카드'를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전략적 압박에 맞서 중국도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최대한 활용해 미국에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순망치한'의 북·중 관계를 강화하는 중국의 행보가 이를 말해줍니다.

미·중 무역전쟁의 생생한 격돌 장면은 요즘 매일같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미·중 패권 경쟁의 격화는 불 보듯 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핵 문제가 미·중 경쟁에 휘말리며 형언하기 어려운 성격 변화를 하는 장면은 향후 한반도 미래를 결정지을 중대한 변수입니다.

어쩌면 북한이 비핵화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중국 압박 전략에 필요하다면 미국은 상당 기간 비핵화를 유예시킬 수도 있을 겁니다.

또 아직은 가능성의 영역이긴 하지만 김정은이 미국의 중국 압박 전략에 동조할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일부 관측통들은 북한이 중국을 압박하는 최전선에 함께 설 경우 과거 파키스탄과 인도처럼 북한의 핵 보유를 미국이 용인할 수 있다는 예상도 합니다.

물론 저는 이 가능성을 낮게 봅니다.

'하노이 노딜'이후 답보 상태인 미국과 북한 간 비핵화 협상이 멀지 않은 시기에 재개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북한이 결국 '비핵화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지난 30년간 그랬던 것처럼 미국과의 적대적 관계 속에 끝내 핵 보유의 길을 추구할 것인지, 현재로서는 다양한 전망이 혼재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 협상은 장기간에 걸친 외교전이 될 것이며,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과 얽혀서 진행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과연 북핵의 운명,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은 어찌 될까요.

'하늘을 움직일 수 있는' 생존을 건 외교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오늘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