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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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연내 제3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동시에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모른다”며 협상의 여지는 남겨뒀다. 그러면서 미·북 간 비핵화 협상과 관련한 입장을 길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미국에 비핵화 협상 재개 조건으로 선(先) 양보를 요구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여정은 1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낸 담화에서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생각이기는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조미(북미) 수뇌회담과 같은 일이 올해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김여정은 판단 근거로 세 가지를 꼽았다. 연내 미·북 정상회담은 자신들에게 무익하며, 회담이 성과가 없으면 그나마 유지됐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관계까지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또 연내 제3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 했던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예언을 실현시켜줄 수 없다고도 했다.

다만 “하지만 또 모를 일이기도 하다”며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김여정은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관계가 좋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현재 미·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생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우리 위원장 동지와 미국 대통령 간의 특별한 친분관계가 톡톡히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이번 담화에는 기존과 달리 비핵화 협상과 관련한 북한의 입장도 구체적으로 담겼다. 김여정은 “나는 ‘비핵화 조치 대 제재 해제’라는 지난 기간 조미 협상의 기본 주제가 이제는 ‘적대시 철회 대 조미 협상 재개’의 틀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하노이 회담탁에 올랐던 일부 제재 해제와 우리 핵 개발의 중추신경인 영변지구와 같은 대규모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다시 흥정해보려는 어리석은 꿈을 품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노딜로 끝난 지난해 하노이 회담의 협상 틀을 이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그는 ‘대북제재 행정명령 1년 연장’ ‘북한 인권 실태 해결 주장’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 지정’ ‘테러지원국 지정’ 등 적대시 정책의 구체적 사례도 들었다.

김여정은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과도 상대해야 하고 그 이후 미국 정권, 나아가 미국 전체를 대상해야 한다”며 섣부른 합의를 하기보다는 대선 이후를 내다보면서 장기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또 “우리는 제재 해제 문제를 미국과의 협상 의제에서 완전 줴던져버렸다”며 대북 제재 해제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날 담화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9일(현지시간) 북한과 비핵화 대화를 매우 원한다면서 ‘고위 지도자들’이 다시 만날 가능성을 거론한 지 6시간 만에 나왔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식 단기적 대미 상황 관리 및 장기적 대응 구상을 동시에 밝힌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미국 대선 결과를 지켜보면서 미·북 대화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