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라디오 방송서 발언해 주목
리용호 회견·볼턴 회고록 내용, 정 부의장 발언과는 차이
北 '영변폐기-제재완화' 요구…美, 빅딜 제시하며 '영변+∝' 타진
[팩트체크] 작년 하노이서 북핵 완전폐기-제재 일부 완화 협상?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대북특별대표 겸임)의 방한을 계기로 북미대화의 향배가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작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때 완전한 북핵 폐기를 전제로 대북 제재 일부를 완화하는 방안이 논의됐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북한이 완전히 핵을 제로(0)로 만들면 미국은 대북제재를 조금 완화해 주겠다는 것이 하노이에서의 협상 내용이었다"며 북한은 지금도 이 같은 협상 구도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진단했다.

맥락상 2019년 2월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번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정 부의장이 말한 협상안을 제시했고, 북한이 그것을 받지 않음에 따라 회담이 결렬된 이래 양측간 교착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취지였다.

정 부의장이 소개한 '협상 내용'은 '빅딜'을 선호해온 미국 입장에서는 '최선'에 가깝고, '단계적 해법'을 요구해온 북한 입장에서는 반발할 내용이었다.

그간 조금씩 알려진 북미정상회담 내용과는 다소 결이 달랐다.

이 같은 정 부의장의 발언대로 하노이 회담을 정리할 수 있을까?
협상에 배석했던 리용호 당시 북한 외무상의 기자회견 발언과 역시 미국 측 배석자였던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을 통해 검증을 시도해봤다.

◇김정은 "영변 핵시설 폐기할테니 민생 관련 제재 풀라"
우선 회담에서 북한의 요구가 영변 핵시설 폐기와 주요 대북제재 해제를 맞바꾸자는 것이었다는 점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다음날인 작년 3월 1일 리용호 외무상은 현지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 핵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의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라고 자신들이 제안했던 협상안을 공개했다.

이 같은 북한의 협상안은 최근 발간된 볼턴 전 보좌관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에도 소개돼있다.

김 위원장은 '영변 폐기-2016년 이래 부과된 유엔대북제재 해제' 방안을 시종 고수했다고 볼턴은 적었다.

◇빅딜 선호한 트럼프, 北제안 거부하며 '영변 플러스 알파' 타진
[팩트체크] 작년 하노이서 북핵 완전폐기-제재 일부 완화 협상?
그렇다면 미국의 협상안은 어땠을까?
볼턴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 김 위원장이 제시한 방안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비핵화의 큰 그림을 제안하는가 하면, 북한에 영변 플러스 알파(+∝)를 타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의 정의(定義)'와 '(비핵화시 달성 가능한) 북한의 밝은 미래'가 각각 적힌 종이 2장을 건넸다는 내용이 볼턴 회고록에 등장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을 '양보'하는 것이 북한에 얼마나 중대한 일이며, 미국 언론에 얼마나 크게 보도될 일인지를 언급하는 김 위원장에게 '완전한 제재 해제가 아닌 1% 수준의 제재 완화'와 같은 제안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는 내용도 같은 책에 나온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칠 수 있는 장거리탄도미사일의 제거 방안을 북한에 제안했다는 내용과, 배석자인 볼턴이 북한 핵무기, 생물·화학 무기,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의 전면적인 신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볼턴 회고록에 소개됐다.

또 회담 막판에 회담의 결과물로 문서를 낼지를 논의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한 합의(complete deal)'를 원한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고, 김 위원장은 '영변 폐기-민생 관련 제재 해제'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말했다고 볼턴은 기록했다.

◇'완전한 핵폐기시 일부 제재 완화' 논의 정황은 찾기 어려워
북한의 협상안은 시종일관 명확했던 반면, 미국의 협상안이라고 부를 수 있는 별도의 구체적인 안이 북한에 정식으로 제시됐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의 정의'와 '북한의 밝은 미래' 관련 내용을 제시하고, '완전한 합의'를 원한다고 말했다는 볼턴 회고록 내용에 비춰 미국이 '빅딜'을 제1옵션으로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는 것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비핵화 방안과 상응조치를 합의문에 담기 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의 당시 협상안을 정 부의장이 밝힌 '완전한 핵폐기시 제재 일부 완화'로 단순하게 정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이 완전한 핵폐기를 요구했다고 치더라도 그 대가로 제재 일부 완화만 제시했다고 볼 근거는 약한 것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영변 폐기에 추가할 북한의 조치가 있는지 물어보고 이런저런 방안을 제안하는 등 낮은 수준의 합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정황도 볼턴 책에 등장한다.

◇당시 北외무상 "美, 영변 외 한가지 더 요구"
[팩트체크] 작년 하노이서 북핵 완전폐기-제재 일부 완화 협상?
하노이 회담 직후 리용호 당시 북한 외무상이 기자회견에서 미국을 비판하며 공개한 미국의 협상안도 정 부의장이 언급한 내용과는 '온도차'가 느껴진다.

당시 리 외무상은 "회담 과정에 미국 측은 영변 지구 핵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한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으며 따라서 미국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소개했다.

미국이 '영변 폐기 플러스 알파'를 요구했다는 말이었다.

만약 정 부의장 말대로 미국이 '완전한 핵폐기-일부 제재 완화'의 교환 방안을 제안했다면 당시 리 외무상은 '영변 외 한가지 더' 정도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북핵 완전 폐기 대 일부 제재 완화'의 구도로 하노이 협상을 설명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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