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7개월 만에 방한…北 재차 "美와 만날 생각 없다"
미국의 북핵 협상 수석대표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사진)이 2박3일 일정으로 7일 한국을 찾았다. 최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한반도 정세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미·북 대화를 재개할 반전의 계기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비건 대표는 이날 오후 군용기를 타고 오산공군기지에 도착했다. 그가 한국을 찾은 건 7개월여 만이다. 비건 대표를 포함한 미국 대표단 전원은 한국 도착 직후 예정에 없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았으나 음성으로 확인됐다. 이날 공식 일정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비건 대표는 8일 오전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방한다. 이후 조세영 1차관과 제8차 한·미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할 예정이다. 교착 상태인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미국이 추진하는 주요 7개국(G7) 회원국 확대, 경제번영네트워크(EPN) 등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도 진행한다. 이 자리에선 최근 악화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미·북 대화 재개와 관련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건 대표는 서훈 신임 국가안보실장과의 상견례를 겸해 청와대 인사들과도 접촉할 것으로 전망된다. 만남이 성사된다면 제3차 미·북 정상회담을 비롯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나 대북 인도적 지원 추진, 한·미 워킹그룹의 운영 방식 개선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비건 대표는 9일 일본으로 이동한다.

비건 대표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미·북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날 북한은 비건 대표의 방한에 앞서 “다시 한번 명백히 하는데 우리는 미국 사람들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엄포를 놨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명의로 발표된 담화는 “어떤 인간들은 우리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가 ‘미국이 행동하라는 메시지’이고 ‘좀 더 양보하라는 일종의 요구’라는 아전인수격의 해석까지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선 “보기에도 딱하지만 중재자로 되려는 미련이 그렇게 강렬하고 끝까지 노력해보는 것이 정 소원이라면 해보라”고 비웃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