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법안 발의 건수가 1000건을 넘어섰다. 20대 국회 같은 기간 대비 두 배를 넘는 건수다. 여당을 중심으로 ‘기업 옥죄기’ 규제 법안과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복지 법안을 쏟아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 규제법 ‘봇물’

21대 국회 한달…규제·퍼주기 법안 쏟아졌다
2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 임기가 시작한 지난달 30일부터 이날 오후 4시까지 발의된 법안 건수는 1004건이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같은 기간 발의된 법안 건수(451건)의 두 배를 넘는 규모다. 21대 국회 들어 하루 평균 30건 이상 발의된 셈이다. 총 법안 중 의원 발의 법안이 990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총 300명인 국회의원 한 명당 평균 세 건 이상 발의한 건수다.

가장 많은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총 52건을 발의했다. 지난 16일 하루에만 20대 국회에서 발의했다 폐기된 공정거래법 개정안, 보험업법 개정안 등 기업 지배구조 관련 규제 법안을 중심으로 51건을 제출했다. 17일에는 경제계에서 반대하는 전자투표제와 집중투표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코스피 3000법’이란 이름으로 발의했다.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규제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인 조정식 의원은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을 위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상생협력을 명목으로 대기업이 얻은 이익을 협력업체에 나눠주는 제도다. 대형 유통업체를 겨냥한 규제 법안도 줄을 잇고 있다. 어기구 의원이 발의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대형 유통업체 등 대기업의 ‘일시정지 이행명령’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액을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인 박홍근 의원은 ‘중소유통업 보호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내놨다. 중소유통업보호지역 등을 지정해 대형 유통업체 진출을 제한하는 법안이다.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비롯해 ‘임대차 보호 3법’도 쏟아지고 있다. 전·월세 신고제,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주택 임대와 관련한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들이다.

“기업 어려움·재정 상황 고려 안해”

복지 강화 법안도 줄을 잇고 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농어업 종사자에게 매달 10만원 이상의 수당을 지급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박덕흠 미래통합당 의원도 농업인들에게 매월 최소 10만원 이상의 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명문화한 국민연금법 개정안도 현재까지 세 건 발의됐다. 국민연금 전반에 대한 제도 개편 없이 연금 지급만 보장하면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안들은 대부분 시행에 필요한 재정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채 발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시민단체 등에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주로 법안 발의 건수로 평가하다 보니 기업의 어려움이나 재정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각종 법안이 국회 회기마다 양산되고 있다”며 “단순히 일하는 국회가 아니라 ‘제대로’ 일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