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남북미 3자회담 필요없다 말해"
판문점 회담서도 문 대통령 배제 요구
핫라인 설치 후 김정은은 보지도 않아
연락사무소 꼭대기층은 북한이 사용
한국 정부는 北인권결의안 또 외면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 백악관 회고록’에서 청와대의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저자세 외교’를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했던 ‘한반도 운전자론’이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 양쪽에서 환영 받지 못했다는 걸 보여줬다는 평가다.

‘메모광’으로 알려진 볼턴 전 보좌관은 책에서 “2018년 4월 28일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김정은이 1년 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전했다”며 “문 대통령은 남북미 간 판문점 3자 회담 (성사)를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김정은이 싱가포르를 선호한다고 하자 물러섰다”고 썼다. 그는 “문 대통령은 1년 안에 비핵화하겠다는 (북한의) 약속을 전했는데 나중에 보니 미 국무부조차 그 시간을 맞출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문 대통령은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 동참하기를 마지막까지 원했다”며 “이런 구상을 무산시킨 것은 북한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이 백악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건 북미 회담이고 남한은 필요없다고 잘라 말했다”며 “북한이 (남북미 간) 3자 회담엔 관심 없다고 한 것이 트럼프와 김영철 간 만남의 유일한 좋은 소식이었다”고 부연했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북 구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지속적으로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써 왔다는 방증이다. 통미봉남은 미국과 직접 거래하면서 남한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북한 전술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싱가포르 회담에서 민감한 문제는 애써 외면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통일에 대한 전망이나 북중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김 위원장은 “본론(비핵화 및 경제 제재 해제)으로 돌아가자”며 즉답을 회피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작년 6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회동을 제안하는 트위터를 게시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기를 바랐으나 문 대통령은 필사적으로 3자 회동으로 만들려고 했다”며 “나는 이렇게 되면 회동 자체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오히려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김정은을 (판문점에서) 맞이한 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계하고 떠나겠다는 제안을 했고, 이를 북측에 전달했지만 북한이 거절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 고집에도 불구하고 북한 요구대로 할 수밖에 없으니 오산 공군기지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볼턴 전 보좌관은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한 간 핫라인을 개설했으나 (북한의 전화기는) 노동당 본부에 있고 김정은은 거기에 간 적도 없다고 고백했다”며 “그 전화기는 주말엔 작동하지도 않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남한 측 핫라인 전화기는 문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 위에 설치돼 있다.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은 2018년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통령 특사단이 북한에서 회동한 뒤 합의했던 성과물이었다. 하지만 남북 정상 간 통화는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다.

북한이 최근 폭약으로 완전히 파괴한 남북공동 연락사무소의 구조도 뒤늦게 논란이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정부가 북한 개성공단에 지은 연락사무소는 4층 구조인데, 꼭대기층을 북한이 써왔으며 2층은 한국이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남북한은 협의할 사안이 생기면 중간 지대인 3층에서 만났다고 한다. 2018년 9월 건설됐으며, 우리 국민 세금이 총 248억원 투입됐다.

이에 대해 국제정치 전문가인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유튜브 강의에서 “일반적으로 상대적 우위를 점하는 쪽이 높은 층을 쓰기 마련”이라며 “남북한 외교·정치에서 우리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 인권 침해 및 반인권 범죄를 규탄하고 책임 규명을 촉구하는 인권결의안에 대해선 2년 연속 공동 제안국 명단에서 빠졌다. 4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유엔 인권이사회가 22일(현지시간)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열린 제43차 회의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을 결의했으나 한국은 제안국 명단에서 제외됐다. 북한 인권결의안은 2003년 유엔 인권이사회의 전신인 인권위원회에 처음 오른 뒤 올해까지 18년 연속 채택됐다.

인권이사회는 결의안에서 “북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 침해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설명한 뒤 “북한 지도부가 반인권 범죄를 예방·억제하고 가해자에 대해 기소 및 재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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