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한나라당 소속인데도 DJ 노벨상 수상 기원"
동갑 서청원 "소신과 개성 갖춘 정치인이었다"
YS→DJ 대변인…좌우와 동서 넘나든 '풍운아' 홍사덕
"정치인으로서는 강골이지만 신사였다.

"
노정객 서청원 전 의원은 17일 밤 숙환으로 별세한 고(故)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을 이렇게 기억했다.

1943년생으로 고인과 동갑인 서 전 의원은 정치의 먼 길을 고인과 함께 걸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자문하는 원로 그룹의 주축이기도 했다.

서 전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옳고 그름을 아주 분명히 밝히는 소신 있는 사람이었고, 개성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홍 전 부의장의 정치 역정은 한국 정치사의 굴곡만큼이나 파란만장했다.

5공 시절 민한당 의원으로 시작,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주도한 신민당 대변인으로 재선에 오른 그는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을 거부하고 노무현 이기택 이철 박찬종 의원 등과 함께 이른바 '꼬마민주당'을 만들었다.

TK출신 정치인이면서도 주류에 편승하지 않은 그는 1992년 대선을 앞두고 '꼬마민주당'과 평민당이 합친 민주당에 입당해 김대중(DJ) 후보 캠프의 대변인으로도 활약했다.

당시 김대중 캠프 부대변인이었던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은 고인이 한나라당 소속으로 국회 부의장을 할 때 노르웨이로 해외순방을 함께 갔던 기억을 더듬었다.

김 전 의원은 "당이 다른 데도 '한국인 모두가 DJ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대하고 있다.

이것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득을 하더라"며 "여야가 달라도 이렇게 하는 것이 정치인의 자세라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YS→DJ 대변인…좌우와 동서 넘나든 '풍운아' 홍사덕
'꼬마민주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박찬종 전 의원은 "정세 판단이 아주 예리하고 정확했던 분"이라며 "한마디로 '의회맨'으로, 연고지인 경북 영주를 떠나 서울 강남, 경기 고양, 대구 서구 등 비연고지에서 어려운 선거를 치러가며 국회의원 자리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3곳에서 다섯번 금배지를 다는 기록도 세웠다.

11,12대는 고향인 영주에서, 14,15대는 서울 강남에서, 18대는 대구에서 당선됐다.

16대는 전국구로 불리는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 당선됐다.

19대에는 정치 1번지 종로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정치인들은 그를 '신사' '의회주의자' '풍운아'라고 기억한다.

신민당부터 정치 궤적을 함께 했던 홍문표 의원은 "YS, DJ 양대 산맥 사이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두 분간 멀어졌던 간격을 좁히는 가교 역할을 했던, 현장감이 있는 훌륭한 정치인이었다"고 전했다.

YS→DJ 대변인…좌우와 동서 넘나든 '풍운아' 홍사덕
기자 출신인 고인은 13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진행했던 '홍사덕 라디오 칼럼'이나 1996년에 낸 저서 '지금, 잠이 옵니까' 등으로 대중적 인기를 끌기도 했다.

특히 '지금, 잠이 옵니까'의 원고 1천100매 분량을 5일 만에 집필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쓴 책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서청원 전 의원은 "독도 영토권 분쟁으로 한일관계가 좋지 않았던 시절 대변인이던 고인이 '일본은 빠가야로(바보 같은 놈)'라는 한 줄짜리 논평을 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