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확장재정은 ‘파탄의 길’ 재원대책 논의해야
나라 빚 확대는 다음 세대 부담, 증세는 지금 부담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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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부가,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솔직해질 때가 됐다. 이른바 ‘확장재정’, 즉 나라돈퍼붓기를 계속할 것인가, 나아가 계속할 수는 있는 것인가에 대해 먼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계속 퍼부을 수밖에 없다면 어디서, 어떻게 돈을 마련할 것인가 하는 게 그 다음이다. 좀 고상하게 말하면 ‘재원문제’다.

가뜩이나 한국형 불황이 진행되어온 터에 ‘코로나 쇼크’로 정부의 역할이 커졌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 역할은 분명히 있다. 그게 규제개혁 등 제도정비가 먼저인지, 재정지출이 우선인지는 충분히 논란거리이지만, 어떻든 정부가 제대로 움직여야 한다. 제도 혁신도 하고 경제를 살리는 마중물도 효과적으로 붓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임체인 정부에 너무 많이 기대하는 것도 애당초 무리다.

재원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돈 마련, 재원 논의 없는 재정확대는 파탄의 길이다. 여러 갈래의 복지도 지속가능할 수 없을뿐더러 재난지원금부터 기업에 대한 온갖 지원금도 일회성에 그칠 수밖에 없다. 나라 살림을 한두 해 일로 끝낼 수는 없지 않나.

◆‘계속 빚낼 것인가, 세금 더 걷을 것인가’

정부의 이른바 ‘재정 총동원령’은 그런 점에서 부실하고 단선적인 선언이다. “정부의 재정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대통령이 나서 말했지만, 지금까지 논의된 바나 나온 것을 보면 국가채무를 늘려가는 게 재원대책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우선 빚을 내 쓰고 보자는 식이다. 올해에만 100조원 이상의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는 계산도 나와 있다. 당연히 국가채무비율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경계선’으로 인식돼온 ‘GDP의 40%’를 훌쩍 넘어 45%에 달하게 될 것인데, 내년 이후 늘어날 게 더 걱정이다.

적자국채로 국가부채를 단기간에 급증시키는 정부의 돈풀기를 국제신용평가사들도 보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국가신용등급, 대외신인도와 연결되게 돼 있다. 신용등급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코로나쇼크와는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남미와 남유럽 재정위기 국가들을 봐왔고, ‘1997년 IMF 외환위기’때 우리도 겪었던 바다.

그래도 돈풀기를 멈출 수 없다면 두 가지 방안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나라 빚을 어느 선까지 늘릴 것인지와 그게 임계치에 달했을 경우 대안은 무엇인가다. 나라살림은 국채발행과 공기업배당, 각종 기금예산 등 여러 곳에 기대지만 제일 큰 부분, 기본적인 수입원은 역시 세수(稅收)다. 결국 세금 문제에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감세(減稅)가 가장 현실적인 경제살리기 대책이다’ ‘감세가 불경기 대응 정석이다’ ‘감세는 세계적인 트렌드다’ 라는 주장이나 논의는 일단 미뤄두자. 국가채무가 급증해 대외신인도까지 위협하는 상황을 염두에 둬야할 판이니까. 대표적인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최근 증세필요성을 거론하면서 군불때기에 나선 것도 그런 차원에서 주목된다. 한국조세연구원 쪽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증세 가능성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최근 ‘익명의 관계자’로 일부 신문에 반영된 청와대 입장도 “증세는 없다”이기는 하다. 세금 문제가 얼마나 민감 예민한 것인지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절대왕조를 무너뜨리기도 한 게 증세였다. 이전 정부 때도 그랬다. 명백히 세금을 늘리면서도 ‘과세 합리화’라고 했을 뿐 증세는 아니라고 부정했다. 정부라는 존재의 기본 습성이기도 하다.

◆‘부자 증세’ VS ‘보편 증세’

어떻든 불가피하게 세금을 늘려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또 고민해야 한다. 국민들이 거듭 솔직하면서 진지해져야 한다. ‘부자증세’로 갈 것인가, ‘보편증세’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부자증세는 이미 시작됐다.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부동산 보유세가 대표적이다. 공시지가를 올리고, 여기서 또 과표 기준까지 올렸다. 가장 공식적이고 보편적인 증세인 세율에 손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세금을 올려나가고 있다. 여기에 종합부동산세 세율 인상안에 남아 있다. 올 들어 대상자가 급증한 종합소득세도 마찬가지다. 필요경비 인정비율을 80%에서 60%로 낮추고, 연간 2000만원이하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비과세 조치를 없앤 것만으로도 종소세 납부자들의 세 부담은 크게 늘었다. 이른바 ‘고소득 전문직’들의 체감 세금은 상당히 많이 늘었을 것이다.

법인세도 주로 내는 소수의 기업이 많이 부담하고 있다. 그래도 부자증세 쪽으로 더 간다면 이런 기업에 대한 법인세와 그쪽의 고소득 종사자들 소득세 겨냥한 것이 될 공산이 크다. 준조세와 부담금까지 합친 ‘국민부담률’이 계속 늘어나는 판에 부자증세를 계속 하면 부작용은 여러 갈래로 나타날 것이라는 게 큰 문제다. 기술과 인력, 기업과 자본의 국외 이탈 같은 일도 예상할 수 있다. 지금처럼 세법개정을 통한 세율 인상을 하지 않으면서도 행정으로 세부담을 증가시켜 나간다면 ‘꼼수 증세’라는 비판도 계속될 것이다.

대안은 보편증세다. 소득 상위의 10% 납세자가 소득세의 78%를 내는 현실, 4.3%의 근로소득자가 근로소득세수의 55%를 내는 현실을 다소라도 바꿀 수 있을까. 그러자면 근로자 가운데 소득세를 내지 않는 전체의 절반가량 근로자들에게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모두가 예외 없이 내는 세금인 소비세(부가가치세)를 올리는 것도 물론 방법이다. 이런 게 대표적인 보편과세다. 달리는 공평과세라는 원칙에 충실 하는 길이다.

◆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 진지한 논의 필요

경제도 어려운 판에, 표계산에 바쁜 정치권이 보편증세에 나설까. 원래는 ‘보편복지, 보편과세’가 정석이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보편복지, 선별증세’에 가깝다. "복지는 확장하되 그 돈은 저들에게서 받아내라"는 식이다. 부자증세에 치우쳤던 것이다.

늘어나는 정부지출을 세금을 더 걷어서 하자면 어떻게든 지금 세대가 그 부담을 지자는 쪽이 된다. 반면 계속 나라빚 늘리기, 국가채무 확대로 돈을 쓰자면 부담을 다음 세대에 넘기자는 게 된다. 솔직하고 진지한 공론이 필요하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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