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字句) 심사 권한을 두고 여야가 맞부딪쳤다. 더불어민주당이 ‘옥상옥(屋上屋)’이라며 법사위의 심사권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자 미래통합당은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가 부실해 법사위가 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맞섰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법사위가 법무부 등 소관 부처 법률심사만 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어서 여야 간 대립이 격화될 전망이다.
與 "권한 남용 막으려면 없애야" vs 野 "초가삼간 태울 수도"
20일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선 시작부터 날선 신경전이 벌어졌다. 통합당 간사인 김도읍 의원이 “오늘 상정된 법안 중엔 소관 상임위에서 부처 간, 업계 간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법안들이 여러 건 있다”며 “상임위 심사는 부처 입장에 매몰될 가능성이 높고, 무책임하게 선심 쓰듯 통과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초가삼간 다 태울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체계·자구 심사는 상임위가 통과시킨 법안을 본회의로 넘기기 전 다른 법률과 충돌하거나 조문 간 모순이 없는지를 살피는 과정이다. 민주당은 현재 법사위가 갖고 있는 심사권을 폐지하고, 상임위가 법안 의결 전 국회사무처 법제실 등의 심사를 받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다.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법사위가 ‘월권’으로 조문을 바꾸거나 통과를 저지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은 김 의원의 지적에 “체계·자구 심사를 구실 삼아 정무적 판단으로 법안을 계류시키고 소관 상임위 위원들의 결정을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반박했다. 그는 “국회는 상임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게 원칙”이라며 “과거 법률가들이 국회에 많지 않았을 때는 법사위가 법률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일을 해왔지만, 이젠 소관 상임위에도 법률 전문가들이 굉장히 많다”며 법사위의 심사 권한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20대 국회에서 소관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 심사 과정에서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게 된 법안은 범죄수익은닉규제법 등 57건이나 된다. 이날도 법사위는 신협의 영업지역(공동유대) 확대를 담은 ‘신협법 개정안’ 등을 계류시켰다. 야당이 위원장으로 있는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를 핑계 삼아 법안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 통과 여부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2013년 환경노동위원회가 통과시킨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의 과징금 기준을 법사위가 크게 바꿔 환노위가 공개적으로 반발한 일도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기엔 현행 상임위 심사 기능이 미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관 부처나 이익단체 중심으로 심사가 이뤄지는 경향이 있어 다른 부처나 업계 등의 의견을 취합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통합당 소속인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법을 집행하는 각 부처 의견을 듣는 것도 광범위하게 보면 체계 문제”라고 했다.

통합당은 여당이 체계·자구 심사 폐지를 추진하는 배경에 정략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통합당 관계자는 “관행적으로 야당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맡도록 한 것은 여당의 일방독주를 견제하고자 한 것”이라며 “결국 여당이 법사위를 무력화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