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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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 방안의 하나로 대기업 지주회사에 벤처캐피털(VC) 설립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금이 풍부한 대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광재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포스트코로나본부장은 1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삼성 SK LG 등 국내 대기업은 주로 해외에서 정보통신기술(ICT)업체를 인수합병(M&A)하고 있다”며 “포스트 코로나 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CVC는 전략적 목적으로 독립적인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 대기업 지주회사는 벤처캐피털을 계열사로 둘 수 없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구글, 인텔 등 대기업이 CVC를 통해 벤처기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 등은 21대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 등 구체적인 조치에 나설 계획이다.
SK·LG도 CVC로 스타트업 인수…'구글式 벤처투자' 물꼬 터준다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가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 극복에 전례 없는 처방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여권에서 ‘금기(禁忌)’로 통하는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 완화까지 공식적인 논의 테이블에 올려 놓은 것은 이 같은 절박함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지금은 기업과 함께 가야 하는 시기”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與, CVC 논의 테이블에 올려

[단독] 민주당, 대기업 벤처캐피털 허용한다
12일 민주당에 따르면 최근 열린 코로나19국난극복위 회의에서는 CVC 허용 방안을 두고 논의가 이뤄졌다. 코로나19국난극복위는 이낙연 전 총리가 위원장을 맡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 위기 해법을 모색하는 당 내 기구다. 회의에서 이광재 포스트코로나본부장은 국내 스타트업 육성과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해 CVC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적극 개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싱크탱크 여시재 원장을 지낸 이 본부장은 과거 토론회에서 “구글에 M&A당했다고 하면 만세를 부르고, 삼성이나 SK에 M&A당했다고 하면 왜 물음표가 달리느냐”며 “기업이 사회적 책임에 쓰는 비용을 벤처기업 육성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이 본부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CVC를 선악의 문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며 “금산분리가 필요했던 과거 상황과 현재 상황에 대한 면밀한 비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CVC 설립이 가로막혀 있는 것은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업을 영위할 수 없도록 한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원칙 때문이다. 현행법상 벤처캐피털이 금융업으로 분류되면서 일반 지주회사는 CVC를 계열사로 둘 수 없다. SK, LG 등 대기업은 계열사 공동 출자 방식으로 미국에 CVC를 설립했지만, 지주사 차원의 과감하고 전략적인 투자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CVC 설립에 대한 규제가 따로 없다. 이 때문에 구글 인텔 등은 CVC를 통해 전략적으로 M&A에 나서면서 몸집을 키우고 있다. 구글은 구글벤처스를 통해 우버에 2억5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인텔은 2012년 CVC 계열사 인텔캐피털을 통해 증강현실(AR) 기술 전문인 한국 스타트업 올라웍스를 전격 인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CVC 투자 규모는 57억달러에 달했다. 해외 기업들은 헬스케어, 인공지능(AI) 등 차세대 먹거리를 확보하는 데 CVC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민주당 “이번에는 다르다”

재계에서는 벤처 생태계 활성화 방안으로 CVC에 대한 규제 완화를 요구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CVC 허용이 검토됐지만 금산분리 완화 논란에 가로막혔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공정거래위원장 시절인 2018년 5월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을 추진하면서 CVC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불과 3개월 만에 CVC 허용 대신 벤처 지주회사 설립 요건 완화로 방향을 선회했다. 김 실장은 당시 “소수 대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김병관 민주당 의원 역시 CVC를 허용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내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민주당에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상황이 달라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지금은 기업과 함께 가야 하는 시기”라며 “기업의 유보금을 벤처 활성화에 투자할 수 있도록 CVC 도입을 위한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법상 금융업의 대상에서 벤처캐피털을 제외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이 유력하다. 여기에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스타트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까지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본부장은 “이공계 출신 VC 인재 육성, 대기업의 기술 탈취에 대한 제도적 보완 등도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corporate venture capital. 기업이 재무적 이익뿐 아니라 전략적 목적을 가지고 독립적인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국내에서는 일반 대기업 지주회사가 CVC를 계열사로 두지 못하고 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