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지난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지난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여당이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하자마자 20대 국회 임기 내 헌법 개정 추진을 밝히고 나섰다. 국민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국민개헌발안제를 도입하자는 ‘원포인트 개헌’이다. 5월 30일 출범하는 21대 국회에서 180석을 확보하게 된 ‘슈퍼 여당’이 본격적인 개헌에 나서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30일 새벽 추경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5월에) 본회의를 한 번 더 열어서 개헌안과 남은 법안을 처리할 것을 미래통합당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국민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게 하는 원포인트 개헌안이 발의돼 있다”며 “(개헌안) 데드라인인 5월 9일 이전에 처리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맞다”고 말했다.

국회 관계자도 “문희상 국회의장이 국민개헌발안제 처리를 위한 5월 8일 본회의 소집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행 헌법 128조 1항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이나 대통령만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야 국회의원 148명은 지난 3월 6일 선거권자인 국민 100만 명 이상이 헌법 개정안을 낼 수 있게 하는 개헌안을 발의했다. 개헌안은 공고일부터 60일 뒤인 5월 9일 이전에 처리돼야 한다.
국민 발안' 꺼내든 巨與…토지공개념 도입 등 전면 개헌 '군불때기'

20대 국회가 종료를 한 달 남기고 헌법 개정 논란으로 뜨거워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당이 30일 2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무섭게 ‘국민개헌발안제’ 도입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단순히 20대 국회에서 ‘원포인트 개헌’을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21대 국회에서 전면적인 개헌을 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토지공개념’, ‘4년 대통령 연임제’ 등을 담아 발의했으나 처리되지 못한 개헌안을 21대 국회에서 관철시키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다.

“국민 발안, 개헌 협상 촉진시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날 20대 국회 내 처리를 강조한 개헌안은 지난 3월 6일 발의됐다. 재적 국회의원 295명 중 과반인 148명이 발의안에 서명했다. 민주당에서 강창일·원혜영 의원 등 93명이 참여했고 미래통합당에서도 김무성·정진석 의원 등 22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현행 헌법은 1987년에 개정돼 33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며 “국민개헌발안제를 도입하면 국회가 국민 요구에 부응하는 헌법 개정을 위해 협력과 협상이 촉진되고 정파적인 이해관계 역시 국민의 참여로 조정될 것”이라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국민 여론에 기댈 수 있기 때문에 헌법 개정이 용이해질 것’이라는 취지다.

국민개헌발안제는 유권자 100만 명 이상만 뜻을 함께하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야권 등에서는 특정 집단 및 세력이 이해관계에 따라 개헌안을 발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국민 여론으로 위장한 ‘청부 개헌안 발의’도 걱정하고 있다. 심재철 통합당 원내대표는 지난 3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유권자 100만 명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같은 조직들만이 동원 가능한 규모”라며 “어떻게 이용될지 뻔히 보인다”고 지적했다.

여당 내 잇따르는 개헌론

정치권에서는 ‘원포인트 개헌’이 21대 국회의 전면적인 개헌을 위한 사전절차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미 여당에서는 전면 개헌을 위한 ‘군불 때기’ 식의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정성호 민주당 원내대표 후보는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한 다음에는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만들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이용선 민주당 서울 양천을 당선자는 지난 27일 언론 인터뷰에서 “21대 국회에서 개헌으로 토지공개념을 빠르게 정착시켜 부동산이나 투기 개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 2월 언론 인터뷰에서 “총선 이후 토지공개념,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을 개헌 주제로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20대 국회 개헌은 어려울 듯…군불 때기?

20대 국회 내 ‘원포인트 개헌’은 성사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통합당이 8일 본회의 개최에 합의할지 여부가 미지수인 데다, 본회의가 열려도 개헌 처리에는 재적의원 3분의 2(현재 290명 재적 기준 194명) 이상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한표 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주요 법안은 다 처리가 된 만큼 이후 일정은 새 원내지도부가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당내 의원이 발의에 참여하기는 했으나 통합당은 공식적으로는 국민개헌발안제 도입에 부정적이다. 발의에 참여했던 정진석 의원도 발의 직후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진행되는 무리한 개헌 논의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정치권은 비록 여당이 20대 국회에서 원포인트 개헌에 실패해도 21대 국회에서 재추진을 하거나 아예 이를 생략한 채 전면적인 개헌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민주당 180석(더불어시민당 17석 포함), 정의당 6석, 열린민주당 3석, 친여 무소속 1석 등 범여권 190석에 통합당 이탈표 10석만 모으면 개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여당이 일부 야당 의원을 포섭하면 야당의 개헌 저지선은 언제든지 무너질 것”이라며 “협치가 아닌 결탁으로 개헌이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도원/고은이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