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리더십' 체제하에서만 성공
"김종인도 이를 알고 전권 요구"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22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자택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통합당은 이번 비대위가 첫 비대위지만 전신 정당들을 거치면서 지난 10년간 7번의 비대위를 출범시킨 바 있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그리고 자유한국당 시절 비대위의 역사는 △2010년 6월 김무성 비대위 △2011년 5월 정의화 비대위 △2011년 12월 박근혜 비대위 △2014년 5월 이완구 비대위 △2016년 6월 김희옥 비대위 △2016년 12월 인명진 비대위 △2018년 7월 김병준 비대위로 이어져 왔다.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을 내세우는 비대위가 출범하게 된다면 최근 10년 사이 여덟 번째 비대위가 된다. 통합당은 거의 매년 비대위를 출범시켜 왔지만 두 번의 박근혜 비대위 이외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적은 한 차례도 없다.

2004년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한나라당(미래통합당 전신) 당사를 천막당사로 옮기기 위해 현판을 내리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변경해 당 분위기를 쇄신했으며 현역 의원의 25%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등 강도 높은 개혁을 단행했다. 그 결과 새누리당은 전체 의석수의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해 원내 1당의 자리를 지켰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박근혜 비대위에도 참여해 총선과 대선 승리의 공신으로 평가받았다.
이 같은 박근혜 비대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력 대권 주자라는 점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 선출을 위해 2017년 3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새누리당은 20대 총선 참패로 수개월 간 지도부 공백 사태가 발생하자, 2016년 6월 김희옥 전 헌법재판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앉혔다. 당시 새누리당은 김희옥 비대위에 전권을 주기보다 혁신위라는 또다른 조직을 만들어 '투트랙' 전략을 취하다가 당의 진로에 혼선만 일으켰다. 또 비대위 출범 후에 친박계와 비박계를 배분한 듯한 모양새로 비대위원을 구성했지만, 유승민계 의원들이 배제되면서 혁신 동력을 잃었고 두 달 만에 문을 닫았다.
4달 뒤 새누리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다시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갈릴리교회 원로목사였던 인명진 전 윤리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인명진 비대위는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꾸며 친박계 청산에 나섰으나 정족수 미달로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지 못하는 등 비대위 구성부터 친박계 반발에 부딪혀 난관에 봉착했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에 대한 징계도 당원권 정지에만 그치면서 말뿐인 혁신 아니냐며 비판에 휩싸였다. 결국 인명진 비대위는 친박의 벽을 넘지 못한 채 3개월 만에 끝났다.

2018년 12월 당시 김병준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비대위원장이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당내 계파정치 타파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정치개혁 구상 'i폴리틱스'를 발표했다. /사진=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성공했던 비대위의 경우 강력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했던 만큼 김종인 전 위원장 역시 '전권'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모두 낙선하면서 권력의 '진공'이 온 만큼 김종인 전 위원장의 전권 요구에는 명분도 따르는 모양새다.
통합당 관계자는 "그동안 비대위의 성공 여부는 결국 강력한 리더십이였다"면서 "대선 주자도 아니고 총선도 끝난 상황에서 발휘할 수 있는 리더십은 전권밖에 없는 만큼 김종인 전 위원장도 이를 알고 이 같은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press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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