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사상 첫 '코로나 항모'…중국 군사력 견제 등 전략 차질 시각
루스벨트호 함장 경질 이어 해군장관대행 사임…트럼프 가세 논쟁 가열
[김귀근의 병영톡톡] '떠다니는 군사기지' 감염병 기습에 백기 들다
'바다 위에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리는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백기를 들었다.

전시 상황도 아니고, 대함 미사일에 공격받은 것도 아닌데 평시에 작전 중인 핵 추진 항모를 멈춰 세운 것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감염병이다.

미국 해군 사상 항모에 감염병이 퍼져 속수무책인 것은 초유의 일이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은 최근 '뉴스레터'를 통해 "미 해군의 상징인 루스벨트 핵 항모가 코로나19 확산을 피하지 못하고, 작전 임무 중단이라는 전무후무한 위기에 직면했다"면서 "이는 미 해군 역사상 획기적 사건 중 하나로 평가한다"고 논평했다.

◇ 핵 추진 항모 3척이 '코로나 항모'…태평양 작전구역서 활동
11일 외신에 따르면 코로나19 기습에 당한 항모는 시어도어 루스벨트호(CVN-71), 로널드 레이건호(CVN-76), 칼빈슨호(CVN-70) 등이다.

니미츠호(CVN-68)에서도 양성 추정 환자가 발생해 긴장했으나 다행히 회복돼 일단 '코로나 항모'라는 오명에서 벗어났다.

3척의 '코로나 항모' 가운데 루스벨트호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

CNN방송 등에 따르면 4천800여명의 승조원 중 97%가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는데 이 중 416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아직 1천명 이상이 결과를 기다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성 판정을 받은 승조원 중 1명은 격리돼 있다가 의식이 없는 채로 발견돼 태평양 괌의 해군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되기도 했다.

레이건·칼빈슨호에서는 현재까지 1∼2명의 확진자가 나왔다고 외신은 전한다.

피해가 큰 루스벨트호는 지난달 초 베트남 다낭을 방문한 후 남중국해와 필리핀해에서 작전을 펼치다가 상황이 심각해지자 괌으로 무기한 피항해 있다.

레이건호는 일본 요코스카항에서, 칼빈슨호는 워싱턴주 북서부 퓨젓사운드에서 각각 정비 중이다.

니미츠호는 미 태평양 연안 워싱턴주 브레머턴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다.

레이건호는 서태평양을 관할하는 제7함대 소속이며, 나머지 3척은 동태평양을 관할하는 미 해군 3함대 소속이다.

이들 항모 모두 태평양과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특히 이들 항모는 유사시 또는 평시에 한반도를 포함한 미 7함대 작전구역인 태평양에서 활동해 한국엔 낯설지 않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극대화됐던 시기인 2017년 11월에는 루스벨트·레이건·니미츠호 등 항모 3척이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연합훈련을 하며 고강도 대북 무력시위를 펼친 바 있다.

이듬해 3월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북한 고위인사가 참여해 평화 무드가 조성된 가운데서도 서태평양에 루스벨트·레이건·칼빈슨호가 나란히 전개되기도 했다.

[김귀근의 병영톡톡] '떠다니는 군사기지' 감염병 기습에 백기 들다
항모는 그 자체로 공격 능력은 없지만, 탑재된 슈퍼호넷(F/A-18) 전폭기 등 70여대의 항공기가 무섭다.

아울러 항모강습단으로 구성된 전력은 어마어마한 전투 및 공격 능력을 갖췄다.

그래서 핵 추진 항모는 미국의 대표적인 전략자산에 꼽힌다.

적진 가까운 바다에 떠 있으면 항공기와 항모강습단 전력이 쉴 새 없이 출동해 가공할 화력을 쏟아붓는다.

핵 추진 항공모함 1척은 F/A-18 전투기, 그라울러 전자전기(EA-18G), 공중조기경보기(E-2C) 등 각종 항공기 70여 대를 탑재하고 다닌다.

축구장 3개 넓이의 갑판에 이들 항공기를 가득 싣고 위용을 자랑한다.

길이가 300m를 넘고 배수량도 10만t을 훌쩍 넘는다.

항모를 중심으로 항모강습단이 구성되는데 이지스 구축함과 미사일 유도 순양함, 군수지원함, 핵 추진 잠수함 등이 주축이 된다.

이지스 구축함과 핵잠수함에는 사거리 2천500㎞에 달하는 대지 공격용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탑재되어 있다.

토마호크 미사일은 이지스 구축함 1척에 20∼30발,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 1척에 12발, 오하이오급 원자력 잠수함 1척에 150여발이 탑재된다.

1개 항모강습단이 4∼6척의 이지스함과 1∼2척의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으로 구성된다면 수백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동시에 쏘아 적 지상 목표물을 흔적도 없이 날릴 수 있다.

이런 공격 능력은 웬만한 국가의 전체 전투력 이상 수준이다.

'코로나 항모'가 회복이 늦어져 작전 임무 투입이 지연되면 서태평양은 물론 남중국해 등으로 무섭게 확장하는 중국 군사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비롯해 미국의 전 대양의 해상전략에 일시적 차질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김귀근의 병영톡톡] '떠다니는 군사기지' 감염병 기습에 백기 들다
◇ 함장 경질한 해군장관 대행도 경질…"승조원 안전책임 함장경질 잘못"
미국은 이번 루스벨트호 코로나19 감염 사태와 관련해 볼썽사나운 민낯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토머스 모들리 해군장관 대행은 코로나19 확산 위험에 따라 승조원들의 긴급 하선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브렛 크로지어 함장을 경질했다.

함장을 경질했던 그는 크로지어 함장에 대해 "멍청하다", "배신" 등의 인신공격성 비난을 퍼부었다가 사과했으나, 결국 자신도 경질됐다.

해군 출신 전문가들은 미국 군 당국이 크로지어 전 함장을 경질한 것은 섣부른 결정으로 잘못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구축함 함장 출신의 김진형 전 합참 전략기획부장은 "항모전투전단장은 전투작전 지휘 임무를 맡고, 그 밑의 항모 함장은 승조원의 안전 문제를 전적으로 책임진다"면서 "만약 감염병으로 승조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그 책임은 함장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함장을 서한 언론 유출로 경질했다는데 어떤 경로로 유출됐는지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함장을 경질한 것은 섣부른 결정"이라며 "함장이란 직책의 특수성을 간과한 정치적 판단으로 성급했다"고 지적했다.

잠수함 함장 출신의 문근식 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은 "질병은 승조원의 안전 문제와 직결되므로 예방적인 차원에서라도 외부에 알려야 한다"며 "작전에 관해 잘못한 것도 아니고 심각한 감염병 때문인데 함장을 경질해서는 안 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귀근의 병영톡톡] '떠다니는 군사기지' 감염병 기습에 백기 들다
미국 해군은 함장 경질 사유로 그가 상부에 서한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암호화되지 않은 전자우편을 사용했고, 서한의 일부 내용이 언론에 유출된 것을 제시했다.

이런 경질 사유를 놓고도 미국 내에서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증손자인 트위드 루스벨트는 뉴욕타임스에 '크로지어 함장은 영웅'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보내 "증조할아버지도 자신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스벨트호 승조원들도 경질된 후 하선하는 크로지어 전 함장의 뒤를 따라가며 손뼉을 치며 "캡틴 크로지어!"를 연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크로지어 함장이 승조원들을 구하려다 경질됐다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는 등 논란에 가세했다.

함장 경질을 둘러싸고 미국 내 여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