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선거, 정권 초반엔 與 승리…중·후반엔 ‘정권 심판’으로 野 승리
이번엔 ‘코로나’ 대 ‘정권 심판’으로 변질…부동층 향방·샤이 보수 변수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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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중반이 치러지는 선거는 여당에 불리한 게 그간의 예다. 대통령 선거가 대선 후보 개개인의 인물과 공약을 보고 찍는 ‘전망적 투표’를 한다면 정권 중반 이후에 실시되는 총선 또는 지방선거는 집권 여당과 정부가 그간 해 온 정책을 두고 평가하는 ‘회고적 투표’성격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 중반에 치러지는 선거가 ‘여당의 무덤’이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역대 사례를 보면 집권 1,2년 때 치러진 선거에선 여당이 이겼지만, 3년 차 중반 이후엔 대부분 여당이 패배했다. 1990년대 이후 치러진 총선을 살펴보자. 1992년 노태우 정권 말기에 실시된 제14대 총선에서 집권당인 민주자유당은 1당을 차지했지만 과반을 얻는데 실패했다. 민자당은 1990년 1월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탄생했다. 출범 당시 228석의 거대 여당이었다. 그런만큼 민자당은 총 299석 가운데 최소 200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149석에 그쳤다. 내각제 각서를 놓고 분열했고, 공천 낙천자들이 통일국민당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6년 김영삼 정부 4년 차에 치러진 15대 총선 땐 집권당인 신한국당은 139석을 얻어 당초 크게 고전할 것이라는 전망에 비해선 비교적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당을 깨고 나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는 등 야권 분열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사실상 패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대중 정권 중반인 2000년 4월 치러진 제 16대 총선에선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이 참패했다. 총선에 앞서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사실을 발표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오히려 ‘신(新)북풍’이라는 민심의 반발을 불러왔고, 보수층 표 결집을 불렀다. 1당을 기대했던 새천년민주당은 115석을 얻는데 그친 반면 한나라당은 133석으로 1당이 됐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IMF 조기졸업’을 선언했지만, 산업·투자·수출 증가율이 고꾸라지는 등 경제 상황이 악화된 게 여당 패배의 주요 원인이었다.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 파기도 패배의 한 원인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1년여 지난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단독 과반(299석 중 152석)을 차지하면서 압승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휘몰아치면서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 등 범여권은 5분의 3에 가까운 의석을 거머쥐었다. 한나라당은 당초 예상보다는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121석을 얻는데 그쳤다.

이명박 정부 출범 두 달만에 실시된 2008년 18대 총선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은 집권 초 프리미엄을 누렸다. 한나라당은 ‘친박(친박근혜)계 학살’등 공천 파동에도 불구하고 153석을 얻었다. 이명박 정권 말에 치러진 2012년 19대 총선은 정권 심판론이 통하지 않은 예외적인 선거였다. 안풍(安風), 디도스 사건 등으로 여권이 불리한 선거였다. 야당 승리가 예견됐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을 차지했다. 그해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새누리당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을 진두지휘한 효과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부 4년차인 2016년 실시된 20대 총선은 공천 파동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새누리당 승리가 점쳐졌다. 한국갤럽이 ‘4·13 총선’ 직전인 4월 4~6일 실시한 조사에서 새누리당은 39%, 더불어민주당은 21%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이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새누리당 패배. 민주당이 123석을 얻어 원내 1·2위 정당이 뒤바뀌었다. ‘정권 중반 이후 선거=여당 패배’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였다. 김영삼 정권 중반인 1995년의 제1회 지방선거,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의 3회 지방선거, 노무현 정부 4년차인 2006년의 4회 지방선거, 이명박 정권 3년차인 2010년의 5회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패배했다. 정권심판론을 비켜가지 못한 것이다. 반면 정권 초반에 치러진 1998년 2회 지방선거와 2014년 6회 지방선거, 2018년 7회 지방선거는 집권 여당이 승리했다.

‘집권 초반 여당 승리, 집권 중반 이후 여당 패배 공식’을 왜 피하가지 못할까. 정치학에 ‘기대 이론(expectation theory)’이 있다. 어떤 정권이든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기대가 크다는 뜻이다. 국민들의 모든 기대와 요구 사항을 다 들어줄 것 처럼 돼 있는 대선 공약이 여전히 효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준비된 대통령’, ‘경제 대통령’ 등 국민들 구미에 들어맞는 구호가 국민들의 뇌리에 부각돼 있다. 대선 때 반대편 후보를 찍은 국민들도 막연하게나마 “잘될 것”이라며 지지에 가세하고, 대통령 지지율은 고공행진한다. 이 때문에 대통령 임기 초반에 치러진 총선 또는 지방선거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을 등에 엎은 집권 여당이 승리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장밋빛 공약이 모두 실현될 수 없음이 드러난다. 불만족스러운 정책들이 노출된다. 집권 중반을 지나면서 국민들은 초기의 기대보다는 실망이 더 커지게 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시점이 집권 3년차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 두드러진다. 집권 중반기 이후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야당의 정권 심판론이 먹혀들면서 여당은 패배하는 게 도돌이표 처럼 돼 왔다.

문재인 정권 중반에 치러지는 ‘4·15 총선’에서도 이런 공식이 성립될까. 올해 초까지만해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도 정권심판론이 핵심 이슈로 전면에 부각될 것으로 점쳤다. 경제 이슈, 조국 논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적폐 청산 논란, 북한 핵문제 등이 총선 핵심 쟁점이 될 것이란 예측이었다. 그러나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사태가 총선판을 바꿔 놓았다. 코로나19가 다른 정치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면서 선거판은 단조로운 양상이 전개됐다. 그러다가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정권심판론’‘조국 심판론’을 외치고,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 모범 대응’으로 방어막을 치면서 뒤늦게 프레임 싸움에 불이 붙었다. ‘코로나’ 대 ‘정권심판론’ 구도에서 유권자들은 어느 쪽 손을 들어줄까. 30% 안팎에 달하는 부동층 향방, ‘샤이 보수’영향력, 지역구별 단일화, 설화(舌禍) 등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