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포항 지열발전사업 실태 보고서…"안전관리·감독 소홀"
물주입 중 발생 지진 위험성 무시…'전조' 3.1 규모 4월 지진 그냥 넘겨
경험부족 업체를 사업자로…허위 보고서 제출 등에도 사업 4차례나 연장
"정부, 포항지진 부른 '지열발전' 부실관리·지진위험 조사안해"
정부가 2017년 11월 발생한 5.4 규모 포항지진 원인으로 지목된 지열발전 사업을 부실히 관리하고 유발지진 발생 가능성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감사원 감사결과가 1일 나왔다.

특히 포항지진 본진의 '전조'격인 2017년 4월 발생한 규모 3.1 지진에 대해 시행사와 정부가 별도의 분석을 하지 않고 넘기는 바람에 대처할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 지적돼 결국 포항지진은 '인재'였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감사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포항 지열발전 기술개발사업 추진실태' 감사보고서를 이날 공개했다.

앞서 포항주민 등은 지난 2018년 11월 지열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 기관의 위법·부당행위가 있었는지 확인해 달라며 국민감사를 청구한 바 있다.

산업부도 작년 3월 정부조사연구단이 '포항지진은 인근 지열발전소가 촉발했다'는 결론을 발표하자 곧바로 산업부를 비롯한 관련 기관의 대처가 적정했는지 점검해달라며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은 청구된 두 사안을 병합해 지난해 9월 18일부터 10월 31일까지 산업부, 포항시,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기평),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자연)등에 대해 감사를 실시했다.

산업부는 연구개발(R&D) 사업 과제를 총괄하고 있으며 에기평은 국가 에너지 연구개발 과제 전담기관으로 주관기관과 협약을 체결해 기획과 중간평가(연차·단계평가), 과제기간 연장 승인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 부실한 안전관리 방안 수립, 관리감독 소홀 등 모두 20건의 위법하거나 부당한 사항을 확인했으며 관련 기관에 관련자 징계·문책, 주의 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 지열발전 따른 '유발지진' 대비 관리방안 부실
감사결과 우선 포항지열발전 사업 컨소시엄을 주관한 넥스지오와 에기평, 산업부는 지열발전으로 인한 유발지진 가능성과 관련해 마련한 '미소진동 관리방안'을 부실 수립·관리했다.

컨소시엄은 2014년 3월 산업부와 에기평에 2009년 스위스 바젤에서 규모 3.4 지진 발생으로 지열발전 사업이 중단된 사례와 함께, 수리자극 전까지 '미소진동 관리방안'을 세우겠다고 보고했다.

수리자극이란 물을 암반 내에 고압으로 주입해 틈을 만들거나 넓혀 암반의 투수율을 증가시키는 작업으로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유발지진이 발생한다.

컨소시엄은 2016년 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총 5차례의 수리자극을 실시했다.

이 중 2차 수리자극 때인 2016년 12월 규모 2.2과 2.3의 지진이, 3차 수리자극 중인 이듬해 4월 규모 3.1과 2.0 지진 등 총 4번의 지진이 발생했다.

컨소시엄은 수리자극에 따른 유발지진 규모를 관측해 녹색·황색·적색으로 구분해 물주입 압력과 유량을 조절하도록 하는 안전수칙인 '신호등체계'를 만들면서 세부내용을 산업부·에기평 등과 협의하지 않았고, 산업부와 에기평도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신호등체계에는 적색단계에 해당하는 지진 발생 시 수리자극을 중단하고 정부기관 승인을 받은 후 수리자극을 재개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어야 하지만 반영되지 않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또한 신호등체계에 따라 수리자극 중 발생한 지진에 대해 산업부, 에기평, 포항시, 기상청 등 4개 기관에 이를 보고해야 했지만 2016년 지진 발생 때 에기평에만 보고하고 웹사이트에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컨소시엄은 2016년 지진 발생 후 슬그머니 신호등체계를 손봐 포항시와 기상청은 연구개발 관리 기관이 아니라며 보고대상에서 빼고, 웹사이트 방문자가 적다면서 발생 사실을 웹사이트에 게재하지 않기로 했다.

산업부도 지열발전에 따른 지진 발생 가능성과 관리 필요성을 담은 미국 에너지부의 '유발지진 관리 프로토콜'을 확인하고도 직접 안전수칙을 만들려 하거나 컨소시엄의 수칙 수립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 4월 지진 위험도 조사 안해…11월에 5.4 규모 지진으로 이어져
2017년 11월 발생한 5.4 규모 지진의 '전조' 격인 지진을 소홀히 넘겼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사업을 주관한 넥스지오는 3차 수리자극 중이었던 2017년 4월 신호등체계 최고단계인 적색등급(규모 2.5 이상)에 해당하는 3.1 규모 지진이 발생했지만, 지열발전과 관련한 지진이라는 점을 산업부·에기평에 보고하지 않았다.

또한 2차 수리자극 때인 2016년 12월 발생한 1∼2차 지진과 발생위치가 다른데도 이유를 분석하지 않아 새로운 단층의 존재를 확인할 기회를 놓ㅅ다.

7개월 뒤인 11월 발생한 5.4 규모 지진은 바로 이 3차 수리자극 중 지진이 발생했던 단층과 같은 면이라고 작년 정부조사연구단이 분석한 바 있다.

컨소시엄은 1∼3차 수리자극에서 물 주입량 대비 지진 규모가 가파르게 커져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는데도 별도의 위험도 분석 없이 같은해 8∼9월에 4·5차 수리자극을 강행했다.

또 5차 때는 당초 계획한 양(320㎥)보다 5배가 넘는 양(1천722㎥)을 주입하기도 했다.

여기에 산업부는 규모 3.1 지진 발생을 보고받아 유발지진 발생 가능성을 알았지만 유발지진 여부를 확인하거나 지진 위험도 분석을 하지 않았고, 에기평도 이런 과정 없이 컨소시엄의 사업 기간을 연장해줬다.

특히 에기평은 연장승인 검토 수리자극 당시 4차례 발생했던 지진의 위치가 수리자극에 따른 미소진동(지각의 약한 흔들림 현상) 위치와 비슷하다는 점을 보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사업 시행사와 산업부, 에기평의 업무 소홀로 규모 3.1 지진이 발생한 후에도 수리자극이 계속돼 5차 수리자극(2017년 9월) 후 2달 후인 11월 규모 5.4 지진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산업부 담당자에게 경징계 이상의 징계처분을 하고, 에기평 관계자는 문책 하라고 각 기관에 통보했다.

◇ 사업 시행사 선정·사업 관리 총체적 부실
정부의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지열발전 사업 경험이 부족한 넥스지오는 당초 정부가 추진하려고 했던 200㎾(킬로와트)급 지열발전 사업에서 영세한 규모와 주요 기술을 해외에서 도입했다는 이유로 탈락했지만 이후 오히려 규모가 큰 ㎿(메가와트)급 지열발전 과제에서 사업자로 선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산업부는 사업비 규모를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도록 500억원 이내로 하도록 무리하게 지시해 사업자인 넥스지오가 자금부족 등으로 중국 업체에 시추·물 주입 등을 일괄발주하게 만들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또한 에기평은 컨소시엄이 사업과제 수행 중 허위 보고서를 제출하거나 시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도 중간평가에서 면밀한 검토없이 4차례나 사업 기간을 연장해줬다.

아울러 넥스지오는 인적·물적 구분이 불명확한 자회사와 장비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모두 96억원의 임차비를 부당 집행, 감사원은 에기평에 임차비 회수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