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 통행금지령에 투표장 못가…"거소투표 허용해야"
"아쉽지만 고육책…참정권보다 생존권 먼저"
코로나19가 빼앗은 참정권…유럽 한인사회 "정말 대안없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주요 발병국의 재외국민·국외부재자 투표를 위한 사무를 중지하기로 하면서 유럽 한인사회가 술렁거렸다.

국민의 기본권이자 민주 시민사회의 핵심 권리인 참정권을 졸지에 전염병에 빼앗기게 된 교민과 주재원, 유학생은 다음달 14일 총선일까지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6일 선거사무 중지가 결정된 17개 곳 중 3분의 1 정도가 코로나19 확산의 또다른 진원으로 떠오른 유럽 내 국가다.

이들 국가는 필수 목적이 아니라면 통행을 엄격히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는 탓에 한국 국민이 투표장에 갈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다.

해당국 주재 한국대사관은 국민 참정권을 실현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고심했지만, 현실적으로 투표가 쉽지 않다는 판단을 정부에 전달했다.

이런 형편 탓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가 비상 상황인 만큼 아쉽지만, 고육지책이라는 반응도 함께 나왔다.

코로나19가 빼앗은 참정권…유럽 한인사회 "정말 대안없나"

◇ "대안 제시해야"…"아쉽지만 불가피한 결정" 의견 분분
독일 교민사회는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재외국민 투표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데 대해 대체로 아쉬움을 보내는 가운데 비판적인 의견이 상당했다.

박선유 재독한인총연합회 회장은 통화에서 "많은 교민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안전거리 등을 유지하며 투표장에 오려고 했다"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교민들이 안전하게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바이에른주(州)의 일부 교민은 앞서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주독 한국대사관이 교민이 투표 당일 프랑크푸르트의 투표소로 이동할 수 있도록 바이에른주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유학생 커뮤니티와 주독 한국대사관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등기로라도 투표해야 한다", "우표투표라도 하도록 해야 하는데 중앙선관위가 너무 무책임하다", "비상시국이지만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등 선거 중단을 비판하는 글들이 주를 이뤘다.

독일에 산다는 한 교민은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번 총선에 투표를 못 하게 된 재외국민과 국외부재자도 한국의 코로나19 격리 대상자와 같이 거소투표를 허용해달라는 청원을 올렸다.

주영 한국대사관은 영국 정부와 재외국민 투표와 관련해 최근 협의했다.

영국 정부는 한국대사관에 투표는 한국의 주권 영역으로, 전적으로 한국 정부가 판단해야 한다면서 영국 역시 5월 예정인 지방선거를 연기했다는 점을 들어 투표를 하더라도 유권자가 거리를 충분히 두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국 내 재외선거관리위원, 한인사회 주요 단체장 등은 투표 취소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입장을 한국대사관에 전달했다.

2천여명이 넘는 영국 내 재외국민 투표 대상자는 정부의 취소 결정으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지 못하게 되자 한목소리로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유권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우려 등을 고려하면 투표 취소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영국 거주 한국 여성이 주로 가입된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여러 가지로 속상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도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아쉽지만 한 명이라도 덜 움직이는 게 나은 상황"과 같은 글이 게시됐다.

런던의 해외동포언론사협회 김훈 회장은 "재외 국민으로서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게 무척 아쉽지만,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영국의 코로나19 감염 방역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에 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탈리아의 코로나19 상황이 워낙 심각하고 정부의 강력한 이동제한령 조처까지 내려져 현실적으로 투표를 시행하는 게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본국에도 그렇게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밀라노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국민의 생존권과 참정권을 두고 고민하다 생존권이 더 중요하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중요한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빼앗은 참정권…유럽 한인사회 "정말 대안없나"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긴급 대책으로 지난 25일부터 4월 15일까지 수도 비슈케크 등 3개 도시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야간 통행을 금지한 것은 물론 낮에도 식료품이나 약품 구매, 병원 방문 등을 위한 긴급한 외출을 제외하곤 이동을 금지했다.

비슈케크 주재 한국대사관은 "주재국 정부의 국가비상사태 조치와 교민 안전 등을 고려해 재외국민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교민 약 1천500명이 사는 키르기스스탄에서는 255명이 재외국민투표를 신청했다.

김기수 키르기스스탄 한인회장은 "투표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교민들도 있지만, 비상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하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통행 금지령이 시행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재외국민, 국외부재자 투표를 신청한 유권자는 전체 교민 약 3천900명 가운데 189명이다.

남아공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의 김진의 전(前) 한인회 회장은 "코로나19 와중에라도 오랜만에 투표를 할 수 있으면 하겠다는 뜻이었지만 결국 투표를 못 하게 돼 저를 포함해 교민들이 아쉬워한다"면서 "한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 하게 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빼앗은 참정권…유럽 한인사회 "정말 대안없나"

◇ 투표 가능 국가에서는 '다행'…통행금지 연장하면 추가 취소될 수도
19일 전세기로 우리 교민과 주재원 80명이 귀국한 이란은 재외국민 투표 대상이 67명에서 20명 미만으로 줄었다.

주이란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란도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 취소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참정권 행사가 민주주의의 핵심 기본권이고 이란은 통행금지령이 아직 발효되지 않아 투표 기간을 4월 1∼2일로 단축하기로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록 유권자가 적지만 투표 과정에서 코로나19에 전염되지 않도록 위생에 각별하게 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테헤란에 있는 주재원 김모(46)씨는 "한국에 돌아가면 시설 격리 등으로 혹시 이번 총선 참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이 전세기를 타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는데 투표를 할 수 있게 돼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재외국민 투표 중지 대상 국가가 확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벨기에는 재외국민 투표 여부가 유동적이다.

벨기에 정부가 한국의 재외국민 투표 기간(4월1∼6일)과 대부분 겹치는 4월 5일까지 이동제한 조처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슈퍼마켓, 약국 방문 등 일부 예외적인 허용 사유를 제외한 제한 조처 위반에 대해서는 최장 3개월간의 구금이나 최고 4천 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런 조처가 다행히 4월 5일에 끝나면 4월 6일 하루 재외국민 투표가 가능하나, 연장되면 투표가 어려울 것으로 주벨기에 유럽연합 한국대사관 측은 우려한다.

벨기에 정부는 이동 제한 조치 시행 중 투표 목적의 외출은 예외적인 허용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대사관 측은 전했다.

대사관 측은 담당 지역인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이번 4·15 총선 재외국민 투표 참여 신청자는 283명이라고 집계했다.

(런던 박대한 모스크바 유철종 브뤼셀 김정은 요하네스버그 김성진 테헤란 강훈상 로마 전성훈 베를린 이광빈 특파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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