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가는 신임 간호장교들 > 대전 자운동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3일 열린 60기 생도 졸업 및 임관식에서 신임 간호장교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다. 이들은 임관식 직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첫 부임지인 대구에 투입됐다.  /국방부 제공
< 대구 가는 신임 간호장교들 > 대전 자운동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3일 열린 60기 생도 졸업 및 임관식에서 신임 간호장교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다. 이들은 임관식 직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첫 부임지인 대구에 투입됐다. /국방부 제공
“임관 후 첫 임무가 고향을 지키는 일이어서 영광입니다.” 3일 대전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열린 임관식을 마친 곽혜민 소위(24)는 다부진 목소리로 결의를 밝혔다. 곽 소위는 일곱 살 때부터 대구에 살았다. 그는 “대구는 준전시 상황과 다름없다고 들었다”며 “한시라도 빨리 고향의 환자들을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임관식을 겸한 졸업식을 마친 신임 장교 75명은 곧바로 국군대구병원으로 향했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악전고투하고 있는 의료진을 보강하기 위해 긴급 투입됐다.

가족과 면회도 못 하고 현장 투입

코로나19 사태로 이날 임관식에는 외부인은 물론 가족들도 함께하지 못했다. 부모의 축하도 뒤로한 채 대구로 향한 이들은 첫날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와의 사투를 시작했다. 이날 0시 기준으로 대구의 코로나19 확진자는 3601명을 기록했다. 국내 확진자 네 명 중 세 명꼴이다.

곽 소위는 대구에서만 확진자가 3000명이 넘게 나오면서 임관을 앞두고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여태까지 공부하면서 많은 혜택을 받아온 만큼 대구 시민들을 돕는 데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여고를 나온 신소현 소위(23)는 “부모님 걱정에 훈련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며 “첫 임무로 고향의 어려움을 더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신 소위는 “4년간 감염병 등 재난 상황에 대비해 대처하는 교육을 받았다”며 “준전시 상황인 만큼 의료인으로서, 또 군인으로서 배운 걸 활용해 선배들과 함께 의연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했다.

대구행을 고대한 건 대구 출신뿐만 아니었다. 기민정 소위(24)는 “간호장교로서 국가 비상상황에 투입돼 도움이 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대전 출신인 김슬기 소위(24)도 “부모님께 소식을 전하니 걱정하는 말보다는 책임감을 갖고 임무를 수행하는 딸이 자랑스럽다고 하셨다”고 했다.

군사교육도 생략한 채 투입

국군간호사관학교 60기 75명의 신임 간호장교는 각자 부임지가 따로 있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행선지가 국군대구병원으로 바뀌었다. 임관 직후 3주간 각 병과에 관한 기초 사항을 배우는 초등군사반 교육도 미뤄졌다. 졸업식 일정도 당초 9일에서 이날로 앞당겨졌다.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신임 장교들이 임관 후 의료현장에 바로 투입된 건 처음이다. 신 소위는 “대구행이 결정된 뒤 동료들 사이에선 걱정을 하기보다 이미 현장에서 헌신하고 있는 의료진과 발맞춰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자는 결의를 다지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전날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찾아 이들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한편으론 안쓰럽고, 사회 첫발을 내딛는 데 힘든 일을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며 “(국민을 위한) 방패 역할을 해주시고 하루속히 군으로 복귀하기를 빌겠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신임 간호장교뿐만 아니라 올해 새로 임용되는 공중보건의 750명의 군사교육 시기를 조절해 전국 코로나19 대응 의료현장에 조기 투입한다. 오는 11일 소집 예정인 군의관 후보생 680여 명 중 대구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이들은 군사교육 소집을 한 달 연기할 예정이다.

‘전장의 나이팅게일’ 산실

국군간호사관학교는 1951년 처음 입학생을 받았다. 1998년 외환위기 극복과 군개혁의 일환으로 폐교가 결정됐다가 2002년 다시 신입생을 받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총 4000명 이상의 ‘전장(戰場)의 나이팅게일’을 길러냈다.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한 간호장교들은 6·25전쟁을 비롯해 베트남전, 이란·이라크 전쟁 등 위험한 의료현장에 숱하게 참여했다. 2014년에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 중인 서아프리카에 파견됐고, 2015년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는 국내에서 민간 의료활동에도 참여했다. 신 소위는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돌봤던 선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본연의 임무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이날 임관식에서 신임 간호장교들에게 “이제 여러분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국군대구병원 현장에서 첫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며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은 국민께 깊은 감동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