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연기인지 발표 안해…군 일각서 사실상 '취소' 관측
한미 군 수뇌, 코로나19 상황 엄중 공감…"가볍게 내린 결정 아냐"
코로나19 기세 한미훈련 일정까지 바꿔…"별도 공지때까지 연기"
한미 군 당국이 27일 내달 초로 예정된 연합훈련을 연기하기로 전격 결정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현실적인 판단으로 분석된다.

한미 국방부는 이날 박한기 합참의장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며칠간 협의 끝에 내린 '연기' 건의를 수용했다.

한미는 이날 발표문을 통해 "이번 연기 결정은 코로나19 확산 차단 노력과 한미 장병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면서 "가볍게 내린 결정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양국 군 당국이 내달 9일부터 예정된 연합훈련을 연기한 것은 감염병이 66년 역사의 한미연합훈련에 영향을 준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2018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연합훈련을 연기해 시행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군의 야외훈련 전면 중단에 이어 연합훈련 연기 조치까지 나오자 감염병이 양국 군의 준비태세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한미는 이날 발표문에서 "별도의 공지가 있을 때까지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언제까지 연기할지에 대한 내용이 없어 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취소'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 의장과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지난 20일 한국군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자 연합훈련 시행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고, 24일 주한미군 가족에 이어 전날 미군 병사가 첫 확진자로 판명되자 연기, 축소, 취소 등을 놓고 최종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 과정에서 한국 측은 코로나19 위기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되어 범정부적으로 강력한 확산 대책이 시행 중인 만큼 훈련을 연기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국 측은 연합훈련은 군사 준비태세와 직결되므로 일정을 조정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주한미군 측은 한국 일부 언론에서 미국이 훈련 연기를 제안했다고 보도하자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입장까지 발표하며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발표문은 "박한기 한국 합참의장이 먼저 훈련을 연기할 것을 제안하였고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이 현 코로나19 관련 상황의 엄중함에 공감하고 연기하기로 합의하여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애초 에이브럼스 사령관을 비롯한 미군 수뇌는 연합훈련을 정상적으로 시행하자는데 무게를 뒀다.

내달 연합훈련을 위한 일부 미군 장비가 한국에 도착해 있고, 연합훈련에 미국 주방위군( 예비군)들이 소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예비군들은 각자 직장이 있어 연합훈련에 참여하려면 휴가를 내야 하고, 미국 정부는 이들의 인건비와 수당, 수송비 등을 지불해야 한다.

훈련이 연기 또는 취소되면 관련 예산도 반납해야 하고, 예비군들의 직장 복귀 일정 등에서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군 관계자들은 전했다.

주한미군 측은 이런 이유 등으로 연기나 취소에 부정적이었으나,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회담 후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축소'를 언급한 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에스퍼 장관은 한국의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연합훈련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장관도 "만에 하나 훈련 상황에 변화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연합방위태세에 문제가 없도록,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한 평가 일정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심사숙고하면서 향후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도 연기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다,
그는 26일(현지시간) 하원 군사위의 예산청문회에 출석해 연합훈련을 "계속할지 또는 연기할지 또는 조정할지"에 대해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면서 에이브럼스 사령관과 박 의장의 최종적인 권고 내용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축소'라고 했지만 밀리 의장이 '연기'까지 언급해 미군 지휘관들이 코로나19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코로나19 기세 한미훈련 일정까지 바꿔…"별도 공지때까지 연기"
애초 강행의지를 보이던 미국이 입장을 바꾼데는 최근 주한미군 속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대구기지에서 61세의 미군 가족이 확진자로 판명되면서 장병과 시설에 대한 위험 단계를 '중간'에서 '높음'으로 격상했다.

경북 칠곡기지에 근무하는 미군 병사가 확진자로 판명된 이후에는 모두 기지 출입 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등 사실상 '준폐쇄' 상태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인도태평양사령부는 26일(현지시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린 성명에서 필수적이지 않은 차원의 사령부 산하 한국행을 모두 제한한다고 밝혔다.

또 미국 국무부는 26일(현지시간) 한국에 대한 여행경보를 2단계인 '강화된 주의'에서 3단계 '여행 재고'로 격상했다.

한미가 연기 결정에 합의한 것은 미국 측의 이런 움직임과도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 한국군도 연합훈련을 정상적으로 시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방부는 코로나19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전국 야외훈련을 전면 중지했다.

이날 오전 기준으로 군내 확진자는 총 21명이다.

연합연습을 주도하는 합동참모본부는 근무자 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군 관계자들은 코로나19로 연합훈련 조정은 감염병이 국가 안보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북한의 위협만 중시됐던 전통적인 안보 개념에서 테러, 사이버 위협, 코로나19와 같은 질병 등 비군사적인 위협 등 포괄적인 안보 개념으로 확대하고, 유형별로 군의 대응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 역사를 보면 1954년 유엔군사령부 주관으로 실시된 포커스렌즈 연습이 시작이었다.

6·25전쟁 당시 36만여명을 파병한 미국이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철수를 본격화했고, 유엔사는 철수에 따른 안보 불안 심리를 누그러뜨리고 한미 양국 군의 군사대비태세 확립을 목적으로 1954년부터 연합연습을 시작했다.

이후 포커스 레티나, 프리덤 볼트, 팀스피릿, 연합전시증원(RSOI)연습, 키리졸브(KR) 및 프리덤가디언(FG)연습 등 다양한 명칭으로 이어졌다.

2018년 6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연합훈련 중지 및 유예 방안이 나왔고, 이후 키리졸브와 프리덤가디언 등은 폐지됐다.

2019년 키리졸브를 대체해 '동맹 19-1' 훈련이 처음 시행됐으나 이후 '동맹'이란 명칭도 사라졌다.

지금은 상반기 및 후반기 연합 지휘소연습이란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