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하와이를 다녀온 뒤로 상념의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지난 2016년, 박한진 박사(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와 '프레너미'란 책을 냈습니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인 프레너미라는 개념을 오늘날 미국과 중국 관계를 설명하는 틀로 제시한 겁니다,
'친구인 척하는 적(an enemy pretending to be a friend)' 또는 '친구인데 언젠가 라이벌 또는 적이 될 수 있는 관계'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책을 낸 이후 많은 분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미국과 중국 관계에 대해 질문을 해왔습니다.

중국과 미국에서 특파원이나 전문가로 일한 만큼 체감적인 답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럴 때마다 "미국의 눈으로 중국을 바라보고, 중국의 눈으로 미국을 바라봐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생각, 그러니까 미국과 중국의 패권 충돌을 기정사실로 보는 '투키디데스의 함정' 주창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추상적인 대답을 하는 이면에는 미중 관계의 내일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하와이 취재'를 통해 생각이 분명해졌습니다.

지난 2일 한국의 한미클럽 소속 언론인들과 장성 출신 인사들을 만난 인도·태평양사령부(USINDOPACOM) 관계자들의 관심사는 온통 중국이었습니다.

지구 표면의 절반 이상을 관할하는 세계 최강, USINDOPACOM 에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가 아닌 떠오르는 신흥 패권국, 중국을 의미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7년 창설된 태평양사령부를 미국은 2018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개칭했습니다.

'인도·태평양'이라는 용어는 중국의 해양 패권 추구(一帶一路 전략)를 강력히 견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하와이는 사실 세계최강 미국의 군사력의 집결지입니다, 5개 항모 전단(戰團)을 지휘하며 핵무기 공격이 가능한 전략폭격기 B-52, B-2를 맨눈으로 볼 수 있었고, 현존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 전투기가 55대가 포진해있는 진주만의 해변에는 현지 사람들이 여유롭게 서핑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브리핑에 나선 미군 장교는 1999년과 현재, 그리고 2025년을 기준으로 중국의 군사력이 얼마나 비약적으로 발전, 확대될 것인지를 압축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는 현재의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임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물론 "언제든 싸울 준비가 돼 있으며 오히려 싸우기 전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과시했습니다.

그에게 "미국의 군사력을 10이라고 치자, 그러면 중국의 군사력은 어느 수준이냐"는 직설적인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잠시 머뭇거린 그는 "대략 5(중간) 언저리쯤 될 거 같다"는 답을 했습니다.

중국의 국력은 욱일승천하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발발했으니 17년 전 사스 때와 비교한 한우덕 박사(차이나랩 대표)의 최근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사스 때 중국 GDP(국내총생산)는 대략 1조 7000억 달러였다.

지금은 14조 달러다.

8배가 넘는다.

경제 규모 세계 제2위, 수출로는 글로벌 1위 나라가 됐다.

전 세계 성장의 3분의 1 이상을 견인하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그런 중국이 흔들리면 세계 경제가 휘청한다.

"
맞습니다.

중국은 이제 세계를 흔들 수 있는 나라가 됐습니다.

경제력(GDP) 지수로만 보면 곧 미국을 추월할 기세입니다.

여기에 5세대 전투력을 갖추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그러나 국력은 경제력뿐 아니라 군사력이나 여타 하드. 소프트 파워를 전부 고려해야 합니다.

실제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발표한 '밀리터리 밸런스 2016'을 보면 미국의 2015년 국방예산은 5천975억달러로 압도적 1위입니다.

2위인 중국(1천458억달러)과 3위 사우디아라비아(819억달러), 그리고 8위와 10위인 일본(410억달러)과 한국(335억달러) 등 2위부터 10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중국이 아무리 힘이 세져도 아직은 세계최강 미국에 맞설 정도가 아니라는 것에는 중국 고위 관료들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의 말은 최근 미묘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2년 전 중국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베이징을 방문한 한국 중견 언론인들을 만난 중국의 고위 당국자는 "이제 중국은 170년 전 아편전쟁으로 서구 제국주의에 무릎을 꿇던 힘 빠진 호랑이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미국과의 대결을 원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피하게 될 경우 피하지도 않겠다"는 그의 말이 하와이에 체류하는 내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대결이 갈수록 노골화되면 그사이에 끼인 한국은 어찌해야 할까요.

한국과 미국, 중국 사이에는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환상적인 가치사슬이 작동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우호적인 관계는 더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세상은 나뉜 지 오래면 합치고, 합친 지 오래면 나뉘는 법"이라는 말은 왕조의 흥망성쇠와 이합집산을 그려낸 <삼국지연의>의 첫 구절입니다.

세상이 합치거나 나뉠 때 강대국들은 친구도 되고 적이 되기도 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역사적으로 보면 신대륙 발견 이후 동서양 역사가 한 공간으로 연결되고 나서 처음으로 동서양을 대표하는 강국이 맞붙는 시의성이 있습니다.

진주만의 해변에서 눈을 돌려 한반도를 바라봤습니다.

아직 분단도 해소하지 못한 우리가 어떤 미래의 좌표를 세워야 할까요.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하와이를 떠나며 무거운 맘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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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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