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군속 동원된 조선인 유골 발굴 현장…정확한 장소 특정 난항
파보니 과거 사진과 다른 지형…"이번에 못 찾아도 포기 안 해"
10일 중장비 투입해 발굴 범위 확장
[르포] "안중근 묘역 발굴보다 어렵다…여기가 맞는지"
"과연 여기를 파는 게 맞는 것인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동원돼 목숨을 잃은 조선인의 유해를 찾을 가능성이 거론된 일본 오키나와(沖繩)현 모토부초(本部町)의 발굴 현장에서는 9일 참가자로부터 예상 밖의 반응이 나왔다.

일본인 아이하라 사라(上原更紗·34) 씨는 흙을 파내는 작업 때문에 몸이 고된 것보다는 유골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불안감이 크다며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이번 발굴은 미국 잡지 '라이프'지에 실린 75년 전 사진, 주민의 증언, 일본 공문서 등에 나타난 내용을 토대로 장소를 추정하고 사망자 신원을 특정했기 때문에 조선인 유골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낳았다.

[르포] "안중근 묘역 발굴보다 어렵다…여기가 맞는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 중에는 일본군 군속(軍屬, 군무원에 해당)으로 동원된 한반도 출신 김만두(1921년생, 경남 출신) 씨와 명장모(1918년생, 전남 출신) 씨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75년 전 흙 속에 파묻힌 유해를 찾는 일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우선 한일 양국 시민단체로 구성된 '겐켄(健堅) 유골발굴 공동실행위원회'(위원회)가 유골이 묻혔을 것으로 추정한 장소는 땅을 파기부터 쉽지 않았다.

전날까지 실시한 중장비를 동원해 예비 발굴을 했는데 땅속에서 곧 불규칙한 형태의 바위층이 나타났다.

바위는 마치 씨와 접한 복숭아 과육 안쪽처럼 날카롭게 솟았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는 형태로 돼 있었다.

[르포] "안중근 묘역 발굴보다 어렵다…여기가 맞는지"
한국·대만·일본 시민과 재일조선인 등으로 구성된 발굴단은 가파른 경사면에 있는 날카로운 바위틈을 메운 흙을 수 시간에 걸쳐 수작업으로 제거했다.

독특한 지형과 바위 모양 때문에 중장비로 파낼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었고 수작업을 해야 하는 양이 통상 발굴보다 많았다.

바위틈이 좁아 삽을 사용할 수 없었고 호미나 쇠꼬챙이로 흙을 파내니 속도는 늦을 수밖에 없었다.

젊은 층이 다수인 발굴단은 구슬땀을 흘리며 의욕적으로 흙을 퍼냈다.

중간에 산호 조각이 나오면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르포] "안중근 묘역 발굴보다 어렵다…여기가 맞는지"
오키나와에서는 시신을 매장할 때 산호를 함께 넣기도 하는 풍습이 있으니 산호가 발견된 곳 인근에서 유골이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또 콜라병이 나오면서 라이프 사진 속에 등장한 병이 아닌가 추정하기도 했으나 전후(戰後) 제품으로 보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바위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라이프지에 사진 속에 묘표(墓標, 사망자의 이름 등을 적어 무덤 앞에 설치한 표시물)가 있던 자리와 현재 파고 있는 위치에 차이가 있다는 의견이 발굴 경험이 많은 이들로부터 제기됐다.

아사토 스스무(安里進) 오키나와현립예술대 부속 연구소 객원연구원(고고학)은 사진 속에는 큰 바위 앞에 상당히 평탄한 지형이 나오는 점을 거론하며 "실제로 흙을 파보니 (사진 속 장소라고 생각했던 곳이) 평탄하지 않다"며 발굴 위치를 일부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오키나와에서 장기간 유골 발굴 활동을 벌여 온 구시켄 다카마쓰(具志堅隆松) 씨는 이날 작업을 시작한 발굴 영역 가운데 해안과 가까운 쪽과 관련해 "전쟁 이후의 쓰레기들이 나온다"며 "이곳은 사람(유골)을 묻을 장소가 아닌 것 같다"고 분석했다.

[르포] "안중근 묘역 발굴보다 어렵다…여기가 맞는지"
그는 비교적 가능성이 높은 곳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예비 발굴이 시작되자 주변에 여러 엇갈린 증언이 나와서 아연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국 측 유해발굴 전문가로 참여한 박선주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는 라이프의 사진에 보이는 묘표와 멀리 배경으로 보이는 섬의 모습 등을 토대로 현재의 위치를 추정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앞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추진단' 산하 유해발굴단장을 맡기도 했던 박 명예교수는 "그때보다 훨씬 위치 특정이 어렵다"며 "보물찾기도 이런 보물찾기가 없다"고 말했다.

[르포] "안중근 묘역 발굴보다 어렵다…여기가 맞는지"
그는 당시 촬영에 사용된 카메라나 렌즈의 재원(화각) 등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에서 사진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도 했다.

발굴단은 첫날 작업 종료 시각이 임박한 시점에 애초에 설정한 곳보다 약간 남동쪽 등을 조금 더 파서 지층의 변화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발굴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이를 위해 10일에는 중장비를 다시 동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타인 소유의 토지를 제한된 시간(3일) 동안 발굴하는 것이라서 일정이 빡빡하다.

또 발굴지 경계에 쌓여 있는 토사가 붕괴할 우려가 있어 발굴 범위를 이번에 대폭 확장하는 것에는 제약이 있다.

[르포] "안중근 묘역 발굴보다 어렵다…여기가 맞는지"
구시켄 씨는 "모처럼 외국에서 시민들이 와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일만 하고 성과가 안 나오면 마음이 괴로울 것 같다"며 "이번에 (유골이) 안 나오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고 의지를 밝혔다.

아이하라 씨 역시 이번에 유해를 찾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시간이 있을 때마다 발굴에 참여할 것이라고 반응했다.

발굴 작업은 11일까지 계속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