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반도체주 쏠림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대다수 기업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업황 개선 기대가 큰 반도체에만 투자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반도체주 시가총액 비중은 30%를 넘어섰다. 지나친 반도체주 쏠림은 시장 불안정성 확대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우선주 포함)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합계는 이날 기준 467조1529억원을 기록했다. 유가증권시장 전체 시가총액(1484조630억원)의 31.5%로, 역대 가장 높은 비중이다. 새해 들어 증시 부진에도 반도체 업황 회복 기대에 이들 두 종목의 주가가 연일 강세를 보인 데 따른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날도 1.54% 오른 5만9500원으로 마감해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반도체주와 달리 다른 업종 비중은 쪼그라들고 있다. 자동차를 포함한 운수창고 업종의 시가총액 비중은 10년 전 9.2%에서 6.9%로 줄었다. 철강금속(8.3%→2.8%) 금융(16.1%→14.0%) 건설(3.4%→1.3%) 등 다른 업종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정연우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 국가의 증시가 특정 산업에 이렇게 편중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몇 년간 경기 침체로 전통 산업이 급속히 축소되고 신산업은 나오지 못하면서 반도체에 의존하는 경제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며 “이것이 증시에 그대로 투영된 결과”라고 풀이했다.국내 증시를 좌우하는 외국인 투자자의 ‘반도체주 편식’이 지속되고 있어 증시 불균형은 더 심화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외국인은 최근 1개월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1조3386억원, 5966억원어치 순매수했다.'반도체 쏠림' 더 커진 증시…'투톱' 빼면 코스피 2200 → 1700삼성전자가 사상 최고가 기록을 또 한 번 갈아치웠다. 10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는 900원(1.54%) 오른 5만9500원에 마감했다. 시가총액(우선주 포함)은 395조원으로 1484조원인 유가증권시장 전체 시총의 26.6%를 차지했다. 사상 최고 수준이다.반도체 업황이 살아나고 있다는 ‘청신호’로 읽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시가총액 비중이 최근 30%를 넘어서면서 시장 불균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혁신 기업을 키워내지 못한 한국 경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자동차 조선 철강 정유 화학 등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질치는 동안 반도체만 컸다는 뜻”이라며 “반도체마저 흔들린다면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될지 아찔하다”고 말했다.더 강해진 반도체 독주이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비중은 이날 31.5%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두 기업이 유가증권시장 799개 상장사 전체 가치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는 뜻이다.10년 전 두 기업의 시총 비중은 14%대에 그쳤다. 조선, 자동차 등이 한창 잘나갈 때였다. 반도체가 최대 호황이던 2017~2018년에도 30%를 넘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반도체 독주 현상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올 들어 코스피지수가 0.40% 오를 때 삼성전자는 6.63%, SK하이닉스는 5.10% 올랐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지수 종가는 2200선이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1700선에 그친 것으로 분석됐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미·중 무역분쟁이 완화되고 기업 실적이 좋아진다고 하지만 다른 업종은 못 믿겠다는 게 투자자의 마음”이라며 “외국인도 기관도 다들 반도체만 쳐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국내외 투자자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지나친 반도체주 쏠림은 시장 불안정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2000년대 초 노키아의 시총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지면서 핀란드 증시 자체가 노키아를 따라 크게 흔들렸다”며 “지금 삼성전자 비중이 당시 노키아만큼 크지는 않지만 특정 종목 비중이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국내 증시의 특정 종목 쏠림 현상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애플은 시가총액이 1조3574억달러(약 1576조원)에 이른다. 한국 증시 전체 시총보다 크다. 하지만 S&P500지수 내 시총 비중은 4.7%에 불과하다.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페이스북, 벅셔해서웨이, JP모간체이스, 비자, 존슨앤드존슨, 월마트 등 쟁쟁한 기업이 즐비하기 때문이다.“새로운 혁신 기업 없는 게 진짜 문제”전문가들은 지수 왜곡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새 지수를 만들면 그만이란 얘기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에는 S&P500지수 외에 다양한 산출 방식의 지수가 있어 투자자가 각자 목적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며 “우리도 기관투자가가 많이 쓰는 코스피200지수의 증시 대표성이 떨어진다면 더 포괄적인 새로운 지수를 만들어 쓰면 된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문제의 본질은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도가 너무 커진 데 있다고 강조했다. 정연우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가 흔들리면 국가 경제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게 한국 경제의 최대 취약점”이라며 “이런 취약점은 한국 증시의 디스카운트(할인)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시장 왜곡을 고치려 할 게 아니라 산업의 불균형을 고쳐야 한다는 얘기다. 변준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은 데이터3법을 1년 넘도록 끌다가 겨우 통과시키는 등 혁신산업의 출현을 가로막는 규제가 너무 많다”며 “삼성전자가 잘나가니 그만하라고 할 게 아니라 새로운 혁신 기업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정연우 센터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자동차 조선 화학 철강 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첨단 정밀화학처럼 기존 제조업을 고부가가치산업으로 한 단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양병훈/임근호/한경제 기자 hun@hankyung.com
기업들의 운용 자금이 1년 사이에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 저하로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서 은행에 예치해두거나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하는 규모가 급감한 것이다.한국은행이 9일 발표한 ‘2019년 3분기 중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작년 3분기 비금융법인(일반기업)의 순자금조달 규모는 18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14.7%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2012년 2분기(26조7000억원) 후 최대치다. 순자금조달은 빌린 돈(조달자금)에서 예금, 주식, 펀드 등을 통해 운용하는 돈(운용자금)을 뺀 금액을 말한다. 이 금액이 증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체 자금 여력이 줄어들면서 빚이 늘었다는 얘기다. 반대로 조달자금에서 운용자금을 뺀 값이 마이너스(-)면 순자금운용이라고 한다.지난해 3분기 기업의 순자금조달 규모가 증가한 것은 대출이 늘기보다는 운용자금이 대폭 줄어든 영향이 크다. 3분기 운용자금은 9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76.4% 줄었다. 2018년 2분기(9조1600억원) 후 최저치다. 운용 자금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금융회사 예치금이 4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67.1% 줄었다. 주식·펀드 투자금은 3조8000억원으로 37.7% 감소했다.운용 자금 감소는 기업의 현금 창출력이 약화된 영향이다. 한은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외부감사 대상 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4.8%로 전년 동기에 비해 2.8%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제조업체 영업이익률은 4.5%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석유화학 분야 주요 상장사들의 실적이 고꾸라진 데다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들도 정부 에너지 정책 등의 여파로 부진 대열에 가세했다. 작년 3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7조777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5.7%,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은 4726억원으로 92.7% 감소했다. 한전의 영업이익은 1조2392억원으로 8년 만의 최저 수준에 그쳤다.작년 3분기 가계·비영리단체의 순자금운용 규모는 17조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46.6% 늘었다. 지분증권, 펀드 자금 운용이 7000억원 줄었지만 금융회사 예치금이 전년 동기 대비 8조7000억원 늘었다. 경제 여건 악화로 주식 및 펀드 투자가 줄고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다 보니 자금이 예금으로 몰린 것이다.정부의 순자금운용 규모는 16조6000억원으로 7.2% 줄었다. 지난해 하반기 재정 지출을 크게 늘린 영향으로 풀이된다.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2011년 이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주식 재산은 2배 이상 불어났지만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주식 재산은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이들이 보유한 핵심 주식 지분 가치가 엇갈린 것이 재산에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이다. 바꿔 말해 자동차 산업에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로도 읽힌다.9일 기업분석 전문업체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2011년 8월부터 이달 2일까지 이건희 회장, 정몽구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주식 재산 변동을 분석해보니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2011년 8월17일 기준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의 주식 가치는 각각 7조5795억원, 7조5139억원으로 600억원 차이에 불과했다. 백분율로 따지면 1% 차이도 나지 않는 수준이다.하지만 이달 2일 기준 이건희 회장 주식 가치는 17조3800억원으로 2011년 8월과 비교해 2배 이상 급증했다. 이 회장 주식 재산은 2012년 10조원대로 접어들었고 2015년 17조원까지 늘었다. 2016년 11조원대로 쪼그라 들었지만 2018년 20조원을 넘기기도 했다.반면 정몽구 회장의 주식 재산은 2일 기준 3조8629억원이다. 2011년 8월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정 회장의 주식 재산은 2012년 6조원대로 내린 이후 2015년 5조원대로 지속 줄었다. 현 기준 3조원대는 그나마 지난해 초보다는 8.4% 늘어난 것이다.최태원 회장은 주식 재산에 큰 변화가 없었다. 최 회장의 주식 재산은 2일 기준 3조3477억원이다. 2011년엔 3조1039억원이었고 2013년 1조원대로 줄었다가 2018년 4조원대로 급증하기도 했다.이 회장과 정 회장의 주식 재산이 큰 폭으로 벌어진 것은 핵심 주식 종목의 지분 가치가 엇갈려서다. 삼성전자 주식가치는 날로 상승했지만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식가치는 하락했다는 의미다.이는 달리보면 자동차 산업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