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 군부 제거에도 '웃는 얼굴'로 자신감…김정일, 이라크전 전후로 두문불출
국방보다 경제부문 먼저 챙겨…'먹고 사는 문제'에 방점

미국이 이란 군부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표적 살해'한 소식이 긴급 타전된 것은 지난 3일.
국제사회는 미국이 이란과 함께 대표적인 반미국가로 꼽히는 북한에 사실상 우회적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그의 '두문불출'에 무게를 뒀던 외부의 '호들갑 예측'과 달리 김 위원장은 나흘 만에 대외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중앙통신은 7일 김 위원장이 순천인비료공장을 현지지도했다고 공개했다.

정확한 날짜가 명시되진 않았지만, 북한 관영매체들이 통상 김 위원장의 시찰을 다음날 보도해왔다는 점에서 6일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솔레이마니 제거 소식을 접하고 사흘 만에 외부활동을 단행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 위원장이 검정 코트를 입은 채 활짝 웃으며 서 있는 모습에선 자신감이 읽힌다.

이란 군 고위실세에 대한 표적 사살을 통해 언제든지 북한 수뇌부를 제거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함께 던졌을 수 있는 미국을 향해, "두렵지 않다"는 결기도 과시한 셈이다.

전원회의 보고에서 밝힌 '정면돌파' 노선이 이번 국면에서 재확인된 것이다.

김정은, '장기 잠행' 父와 달리 거침없는 공개행보
더욱이 김정은 위원장의 이런 행보는 복잡한 대내외 정세에 따라 걸핏하면 '잠행'했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결이 다른 것이어서 이례적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던 2003년 3월을 전후로 두문불출했다.

2003년 1월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을 때는 그해 2월 12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하고 나서 최고인민회의에도 불참하는 등 모습을 감췄다가 50일 만에 활동을 재개했다.

그의 최장 잠행 기간은 87일로,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7.8) 이후 중앙추모대회(7.20)에 초췌한 모습을 드러내고 87일 만에 러시아 대통령 특사를 만났을 때였다.

이와 달리 김정은 위원장은 주요 국면마다 대외 활동을 쉬지 않는 모습이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파국을 맞고 전쟁위기설이 나돌던 2017년에도 비슷한 양상이 관찰된다.

그해 미국은 3월 독수리(FE) 훈련과 키리졸브(KR) 연습에 역대 최대 규모의 특수전 부대를 참가시켰다.

당시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 투입됐던 네이비실 6팀(데브그루)도 한반도에서 우리 특전사 요원들과 연합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져 북미 간 '강 대 강' 대치를 예고했다.

그럼에도 김정은 위원장은 1월 여명거리 건설 현장 시찰, 2월 신축 고아 교육시설 시찰과 탄도미사일 '북극성 2형' 시험발사 현지지도, 3월 조선혁명박물관 시찰 등 경제와 국방을 아우르는 공개행보를 이어갔다.

이를 종합해볼 때 김 위원장은 '은둔형' 지도자였던 부친과 달리 '과시형' 스타일로서, 고조되는 위기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굳힌 것으로 보인다.

젊은 나이와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은, '장기 잠행' 父와 달리 거침없는 공개행보
한편, 새해 들어 첫 현지지도로 국방 부문이 아닌 경제부문, 특히 비료공장을 선택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과 국방력 강화로 난관을 극복하자는 '정면돌파전'을 새 투쟁 구호로 제시하면서 "기본전선은 경제전선"이라고 밝혔다.

체제 수호를 위한 국방력 강화가 우선이었다면 새해 첫 시찰 행보로 군부대를 선택했겠지만, 공장을 먼저 찾았다는 것은 정면돌파전의 우선순위가 경제임을 잘 보여준다.

또 만성적인 비료 부족이 북한의 식량증산을 어렵게 만드는 아킬레스건인 만큼 이 문제를 푸는 데 나섬으로써 민생과 주민 먹거리 해결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