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두 차례 당 전원회의·12월 전원회의로 신년사 대체
1956년 김일성 정권 최대 위기…김정은의 현국면 엄중 인식 반영
北김정은, 1956년 김일성 '8월종파사건' 때와 '닮은 꼴' 대응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2019년 연말 북한 정치사에서 최대 위기였던 1956년 '8월 종파사건' 때와 유사한 대응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끈다.

한해에 두차례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특히 12월 전원회의에서 한 김정은 위원장의 '보고'를 사실상 신년사로 대체하는 등 63년 전 김일성 주석을 그대로 따라 하는 모양새다.

'초대국' 미국과 양보 없는 대결 의지를 밝힌 김 위원장의 행보는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에 추종하며 김일성 정권의 존립을 흔들었던 1956년 8월 종파사건 당시 김 주석의 대응과 닮았다.

김정은 정권이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자칫 사라질 수도 있었던 김일성 정권의 63년 전과 동일시하는 것은 미국과 대결한 현 국면을 얼마나 엄중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스탈린 사망 후 집권한 흐루쇼프 등 소련 지도부는 1956년 들어 수정주의를 내세우면서 북한에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뜻하는 중공업 우선 정책을 포기하고 민생을 우선 발전시키라고 압박했다.

김 주석의 노선은 '중공업을 우선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다 같이 발전시킨다'는 것으로, 사실상 김정은 정권의 경제·핵병진 노선과 같았다.

당시 김일성 정권의 권력 핵심에 있었던 최창옥·박창옥 등 '연안파'와 '소련파'는 소련의 민생 우선 방침에 순응하며 김 주석에게 노선 전환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김 주석이 노선 수정에 반대하며 중공업 우선 정책을 고수하자 이들 세력은 김 주석의 외유 중 그를 축출하기 위한 모의를 꾸몄다.

北김정은, 1956년 김일성 '8월종파사건' 때와 '닮은 꼴' 대응

동유럽 사회주의국가 순방 중 충격적 소식을 접한 김 주석은 일정을 중단한 채 서둘러 귀국했고 8월 전원회의를 열어 반대파를 제거했다.

김일성 정권에 남아있던 마지막 외세 의존 세력을 쳐냄으로써 김일성 일인 지배체제를 세우기 위한 기틀을 세운 변곡점으로 북한 정치사에서는 평가한다.

노동신문도 지난 4월 21일 '위대한 당을 따라 총진격 앞으로!'라는 제목의 정론에서 "공화국의 근본이익과 배치되는 강도적인 요구를 내세우는 적대세력들의 책동으로 시련과 난관이 끊임없이 조성되고 있는 오늘의 정세는 우리로 하여금 1956년의 그 나날을 돌이켜보게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만 리 장정에 오르시었던 우리 수령님(김일성)께서 무거운 마음을 안고 조국에 돌아오시었던 그 준엄했던 1956년"이라고 언급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하노이 '빈손' 귀환에 따른 현 국면을, 김 주석의 1956년 동유럽 순방 중 귀환과 동일시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내민 '일괄타결·빅딜' 요구를 거부하고 왕복 6일간에 걸친 '2만리 열차 행군'으로 귀국했다.

김 위원장의 하노이 이후 움직임도 김일성 주석의 당시 후속 행보를 답습했다.

김 주석은 1956년 8월 전원회의에 이어 그해 말 다시 '12월 전원회의'를 열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과 '혁명적 군중노선'(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라는 관점에서 대중을 불러일으키는 노선)을 선언한 후 평양 인근의 강선제강소(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찾아 노동자들에게 정책적 지지와 강재 생산량 증가를 호소했다.

北김정은, 1956년 김일성 '8월종파사건' 때와 '닮은 꼴' 대응

이를 계기로 그 유명한 '천리마운동'이 탄생했으며, 실제 전쟁으로 피폐해진 북한 경제가 크게 성장한 계기가 됐다.

북한은 1956∼61년의 5개년계획을 2년 반이나 앞당겨 수행하고 공업 총생산액 3.5배, 국민소득 2.1배 증가 등 고도성장을 이뤘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하노이 이후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위한 새 무기의 잇단 시험발사와 자립경제를 위한 시찰을 이어가는가 하면 백두산을 두차례 등정하며 내부 결속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어 연말 나흘간 제7기 5차 전원회의를 열고 제재에 맞서 자립 경제건설을 지속하면서 체제 수호를 위해 핵을 포함한 새로운 전략무기의 지속적인 개발에 나설 뜻을 밝혔다.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며 경고했던 '새로운 길'이 결국 경제·핵병진 노선의 부활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김 주석이 1956년 12월 전원회의를 마치고 이듬해 1월 신년사를 하지 않았던 것처럼 김정은 위원장 역시 5차 전원회의에서 나흘간 했던 보고로 신년사를 대신했다.

1956년 권력 기틀을 다진 김 주석은 이후에도 수차례 권력투쟁과 경제 총력전을 거쳐 일인 지배체제를 공고히 했고 이는 3대 세습 체제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는 동유럽 사회주의체제가 공고한 환경이어서 정치·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지만, 현재 국제사회의 제재와 고립 속에 있는 김정은 정권이 핵을 유지한 채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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