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재정자립도 향상, 도시-농촌 양극화 해소 관건
자치단체장 견제 수단 한계…주민소환제 등 개선 시급
넉넉한 자치 재정 확보, 시민중심의 분권만이 '살 길'


"국비 지원 없이 지방자치단체가 별도의 재원을 마련할 재간이 있나요"
[2020전망] ②'갈길 먼 지방분권'…해답은 '재정독립·시민중심 자치'
관청 앞에서 주민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집회나 기자회견이 열릴 때마다 공무원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볼멘소리다.

주민 복지 사무를 처리하는 것은 지자체의 헌법상 역할로 그 근간은 '재원'이다.

그런데도 국비 외 자체 수입을 늘릴 마땅한 묘책이 없는 게 전국 모든 지자체의 현실이다.

내년도 예산편성 철이 지난 요즘 충북도 농정국은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농민단체가 발의해 도에 제출한 농민수당 조례안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농민단체 요구대로 도내 7만5천여 농가에 월 1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려면 연간 900억원의 재원이 필요한데, 이는 도 농정예산의 16%에 해당한다.

예산 구조조정을 하거나 절감 방안을 찾아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조례가 제정돼도 충북도가 실행하기 어렵다.

지방정부는 자치입법권을 갖고 있지만 범위가 매우 제한돼 있다.

법률에 근거 없이 지자체 조례만으로는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새로운 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

따라서 지자체와 지방의회는 주민에게 혜택을 주는 조례만 제정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지방 재정난을 가중하는 원인이 된다.

[2020전망] ②'갈길 먼 지방분권'…해답은 '재정독립·시민중심 자치'
헌정사상 처음으로 제2공화국(1960~1961) 장면 정부에서 전면 실시됐다가 5·16 군사 쿠데타로 폐지된 지방자치제가 1990년 부활한 지 내년이면 30년이 된다.

하지만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정책과 법령을 집행하는 하급 기관 역할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 균형 발전 및 지방분권 분야 대선 공약에는 지방의 재정 수준을 높이기 위한 계획이 포함돼 있다.

8대 2 수준인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6대 4 수준으로 바꾸는 게 핵심 내용이다.

국세인 '환경개선부담금'이나 '주세' 등을 지방세로 넘기고 영유아 무상교육, 기초연금과 같은 보편적 복지 예산에 대한 국비 부담을 대폭 올리는 내용도 담겨 있다.

박재율 지방분권전국회의 상임공동대표는 "지방정부의 재정이 중앙정부가 나눠주는 국세 위주로 꾸려진다는 점에서 주민 주도로 지역발전을 모색하는 게 어렵다"며 "정부 공약대로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6대 4 수준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키웠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 풀뿌리 주민 운동은 활성화된 편이다.

러브호텔 반대 투쟁이나 자치단체장·지방의원 대상 판공비 공개 요구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단체장을 대상으로 한 주민소환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충북 보은에서는 일본 아베 정부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산 정상혁 군수에 대해 주민소환 투표 청구 서명운동이 추진되고 있다.

[2020전망] ②'갈길 먼 지방분권'…해답은 '재정독립·시민중심 자치'
그러나 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 통제 기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낮은 투표율 탓이다.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의 'SRF 반대 어머니회'는 생활폐기물 에너지화시설 가동과 관련한 민원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시의원 2명에 대한 주민소환을 청구했으나 투표율이 개표 요건(33.33%)을 밑도는 21.75%에 그치면서 무산됐다.

2017년에는 '경북 군위 통합이전 대구공항 유치반대추진위원회'가 김영만 군위군수 주민소환을 추진했으나 정족수 미달로 각하됐다.

유치반대추진위가 주민 서명부를 제출했으나 군위군 선거관리위원회 검토 결과 유효 서명이 주민 수의 15%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관영 좋은예산센터 이사는 "주민소환제는 주민이 단체장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주민의 33%가 평일 이뤄지는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지적하고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광역자치단체 내 기초자치단체의 균형 발전을 유도하는 것도 지방자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다.

충남의 경우 전체 인구 212만4천여명 중 60%가 천안, 아산, 당진, 서산 등 북부권에 집중돼 있다.

대기업이나 제조공장이 위치했기 때문인데, 북부권의 지역내총생산(GRDP) 규모는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나머지 지역에서는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2020전망] ②'갈길 먼 지방분권'…해답은 '재정독립·시민중심 자치'
다른 시·도의 도시별 인구 차이 역시 크다.

경북의 인구는 지난달 기준 266만5천775명이다.

이 가운데 포항시는 50만7천430명, 구미시 42만95명이지만 양양군의 인구는 1만7천31명에 불과하다.

1년 전보다 505명 감소했다.

강원 인구(154만1천399명)의 73.1%인 112만6천726명이 18개 시·군 중 7개 시에 몰려 있다.

양양·고성·화천·양구 4개 군의 인구는 2만명대에 그쳤다.

대도시권과 주변 중소 도시, 농촌을 연결하는 거점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고 공공서비스와 생활 인프라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다.

김대광 충북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은 "법적, 행정적, 재정적 자치권이 확대되는 자치분권 실현으로 지역의 다양성을 살리는 정책을 전개해야 하며 시민이 중심이 되는 지방자치 분권 실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병관 충북청주경실련 정책국장은 "경제 규모는 커지고 주민들의 행정수요가 다변화하는 상황에서 지방정부의 자치권과 자율성이 보장돼야 주민 의견이 존중되고 주민자치가 실현되는 지속가능한 자치분권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성식, 김선경, 김용민, 박정헌, 백도인, 신민재, 심규석, 양영석, 오수희, 우영식, 임보연, 임채두, 장덕종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