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증세를 공식 의제로 꺼내들었다. 정권 출범 초기 ‘부자 증세’에서 한발 더 나아간 ‘보편적 증세’를 논의하겠다고 나섰다. 법인세율을 추가로 올리고 40여 년간 변동이 없던 부가가치세율도 인상하는 방안이다. 복지 확대용 확장 재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결국 ‘세금 폭탄’을 안기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복지확대 위해 '증세'하자는 靑 자문위
이태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미래정책연구단장은 12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정책기획위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동 주최로 열린 ‘혁신적 포용국가 미래비전 2045’ 발표회에서 국민 조세부담률을 중·장기적으로 4~5%포인트 높이는 내용의 ‘누진적 보편 증세’ 방안을 발표했다. 조세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에서 국세와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18.8%에서 지난해 20.0%로 높아졌다.

이 단장은 구체적인 증세 방안으로 법인세율 인상과 함께 부가가치세율 상향을 제시했다. 그는 “포용적 복지국가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누진적 보편 증세의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정책기획위 안을 경청하겠지만 모두 반영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문재인 정부 들어 22%에서 25%로 3%포인트 올랐다. 부가가치세는 1977년 제도 도입 이후 현재까지 10% 단일 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증세론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주재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처음 불거져 나왔다. 문 대통령이 확장적 재정정책을 주문하자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의 조세부담률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여권은 줄곧 증세 방침을 부인해 왔다.
증세 띄우는 靑 싱크탱크
與는 "총선 코앞인데…" 여론악화 우려에 당혹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증세론’을 꺼내든 것은 확장적 재정정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세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이제민 부의장도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증세 추진을 주문했다. 이 부의장은 당시 “일자리 창출, 복지 확충 등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중장기적인 증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주당은 연이은 ‘청와대발 증세론’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불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청와대에서 공개적으로 증세를 언급하면서 여론을 악화시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집권 4년차에 ‘보편적 증세론’을 꺼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철회한 아픈 경험도 있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복지국가 재원 마련을 위한 조세부담률 상향은 중장기 과제로서 논의할 필요성은 있다고 본다”며 단기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밝혔다. 수도권 한 의원은 “총선 전에는 증세 문제를 절대 꺼내선 안 된다”며 “정책기획위에서 발표한 것은 계획이지, 당에서 이를 논의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부가가치세 문제를 함부로 언급했다가는 자칫 ‘서민 호주머니 털기’로 보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도 최근까지 증세와 관련한 논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조사에서도 보편적 증세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이 더 많다. 보건복지부 의뢰로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가 지난해 12월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편적 복지’를 위한 ‘보편적 증세’에 반대한 응답이 35.0%로 찬성(32.4%)을 앞섰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올 들어 세법 개정과 관련해 보편적 증세 논란에 휩싸였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월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연말에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다가 ‘보편적 증세’라는 비판에 부딪혀 접었다.

임도원/성수영/김소현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