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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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도 ‘집권 3년 차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청와대·여당과 검찰이 전면전을 벌이는 양상을 보이면서 정치권에서 이런 얘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집권 3년 차 징크스’는 역대 정부들이 3년 차에 측근·실세들과 관련된 각종 의혹들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호된 시련을 겪은 것을 두고 붙여진 것이다.

현재 여권과 검찰은 그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전 방위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여러 의혹들을 놓고 한 차례 격돌했던 양측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둘러싼 하명 수사 의혹,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등을 놓고 전면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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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에 휩싸였던 박근혜 정부 때를 제외하고 여권과 검찰이 이렇게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여권은 사활을 걸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검찰을 공격하고 있다. 자칫 집권 후반기 정권의 명운을 가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변태적 수사’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특별검사 카드를 꺼냈고 검찰 공정수사촉구특별위원회도 구성했다. 말이 촉구지 사실상 전면적인 압박이다. ‘강골’로 소문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법무부 장관 후보로 발탁한 것도 검찰 견제 차원이다.

여당이 검찰을 비판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사법 개혁에 대해 검찰이 저항하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은 특히 ‘윤석열(검찰총장) 사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검찰 특수부(현 반부패수사부) 출신들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높다. 피의 사실을 유포해 고도의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이 여권의 이런 기류를 압축해 보여준다. “검찰이 보여주는 일련의 모습은 검찰 개혁을 막기 위한 몸부림이다. 수사권을 무기로 검찰 개혁을 저지하려 하고 있다. ‘피의 사실을 유포하고 강압 수사한다’는 시중의 비난이 다시 서초동 검찰청사를 향하고 있다. 검찰은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저지 의도가 아니라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수사라는 비판을 성찰해야 한다.”

◆ “‘스모킹 건’ 나온다면 치명상” 내심 긴장

여권 일각에선 검찰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여권의 전략가로 통하는 한 의원은 이렇게 분석했다. “검찰은 내친 김에 판을 벌여 나가고 있고 청와대와 여당은 떼밀려가고 있다.

윤석열 사단’이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짐작된다. 이들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임명된다면 옷을 벗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차피 그럴 상황이라면 윤 총장을 엎고 다른 꿈을 꿀 수 있다고 본다. 검찰 특수통들은 언론 플레이의 귀재들이다. 이를 통해 수사를 극대화한다.

검찰을 장악한 그들이 계기가 주어지면 ‘우리 중에서도 직접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라며 움직일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 제3 대선 후보, 시민 후보 콘셉트를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도로 정치판을 흔들어 놓으려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권력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겠나.”

또한 여권 일각에선 청와대에 대한 불만도 제기된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검찰이 저렇게 칼을 휘두르는데도 청와대가 힘을 못 쓰는 것은 조국 사태 때 청와대 참모 전면 교체를 비롯해 전방위적으로 일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여권은 검찰 수사에 강력 대응 방침을 천명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 고민이다. 청와대를 향한 의혹들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 터져 나오면서 여론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 특별검사 카드도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이 반대하면 성사되기 어렵다.

여권이 검찰 수사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면에는 검찰발(發) 의혹들이 혹여 레임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권은 레임덕 단어 언급을 삼가고 있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집권 중반기 지지율이 40%대 중·후반을 보인 대통령이 있었느냐”고 반문한 뒤 “그런데도 레임덕이니 집권 3년 차 징크스니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내심 긴장하고 있다. 특히 공직 기강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각종 의혹에 휘말리고 있다는 점이 큰 부담이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의혹 중 하나라도 ‘스모킹 건’이 나온다면 정권에 치명타를 안길 수 있다.

더욱이 검찰은 내년 총선 때 선거 사범 문제를 갖고 칼자루를 계속 쥘 기회가 있다. 정치권과의 힘의 균형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는 얘기다. 여권이 검찰을 향해 연일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내는 이유다.

한 중진 의원은 “검찰발 의혹들이 여론을 들쑤시면 사실 여부를 떠나 민심이 요동치고 정권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며 “이런 흐름이 총선 때까지 이어진다면 여당은 그야말로 정권 후반기 국정 동력을 잃을 수 있어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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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학규 대표·박지원 의원, “레임덕 왔다” 진단

범여권 인사들조차 레임덕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하명 의혹 등과 관련해 “레임덕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모든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검찰에 가서 사실을 인정한 것은 중요한 레임덕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박 비서관과 박 전 비서관 부하였던 이인걸 전 특감반장이 한솥밥을 먹던 현 정권 실세 참모들에게 칼끝을 겨누며 내부 충돌을 일으킨 것 자체가 권력 누수라는 것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의혹이 사실이라면 문재인 대통령도 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최측근 권력형 비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라며 “레임덕이 몰아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여권 실세들의 개입설이 나오고 있는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한국당은 기회를 잡았다는 표정이다. 유재수 전 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 등을 ‘3대 친문 농단 게이트’로 규정하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총선에서 이슈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파헤칠 계획이다.

검찰 수사 의혹들이 게이트로 번진다면 한국당으로선 내부 갈등을 덮고 갈 수 있는 호재도 될 수 있다. 당 관계자는 “의혹들에 대한 제보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수사로 말하겠다며 배수진을 친 양상이다. 여권의 전 방위 공세에도 권력의 핵심부인 청와대까지 압수 수색한 것은 전혀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윤 총장과 가까운 한 변호사는 검찰의 강공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의혹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데도 정권의 눈치를 보며 수사를 미진하게 하면 정권이 교체된 뒤 어떤 후폭풍이 일지 윤 총장이 더 잘 알 것이다. 윤 총장 자신이 현 정부 들어 이전 정부를 겨냥한 적폐 수사를 총대 메고 주도해 왔다. 이 전 정부 때 검찰 수사가 끝난 사건뿐만 아니라 법원 재판까지 끄집어 내 다시 파헤쳤다. 대법원장·대법관·판사·검사들이 줄줄이 엮여 들어가지 않았느냐. 이런 사정을 뻔히 알고 현 정권이 압박을 가한다고 물러설 수 있겠느냐. 절대 뒷걸음치지 않을 것이다. 그게 개인을 위해서도, 현 정권을 위해서도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여권과 검찰의 대치는 끝이 어딜지 짐작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정국 혼돈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수사 결과에 따라 어느 한쪽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 불가피하게 됐다.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