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이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29일 본회의 통과는커녕 20대 국회에서 폐기될지도 모를 처지가 됐다. 여야 간 이견이 없는 비쟁점 법안이 국회의원 한 명의 어깃장으로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상임위원회들끼리 처리를 미루는 ‘핑퐁게임’까지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여권의 시민단체 눈치 보기까지 더해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데이터 경제 활성화’도 ‘공수표’가 될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이 될 ‘데이터 3법’의 입법이 정치권의 벽에 가로막혀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정의당 의원들이 지난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신용정보법, 인터넷전문은행법 개정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이 될 ‘데이터 3법’의 입법이 정치권의 벽에 가로막혀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정의당 의원들이 지난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신용정보법, 인터넷전문은행법 개정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임위 문턱도 못 넘은 3법

26일 국회에 따르면 데이터 3법은 이날 현재 모두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지난 25일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의 반대로 의결하지 못했다. 정무위는 다음 법안소위 일정도 아직 잡지 못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아예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과방위 역시 예정된 법안소위 일정이 없다. 그나마 개인정보보호법이 14일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해 가장 진도가 빠르다. 행안위는 27일 전체회의를 열어 통과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다만 여야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 구성의 여야 비율을 놓고 의견차를 보여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나경원 자유한국당·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5일 정례회동에서 데이터 3법을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선 각 상임위 전체회의를 통과하고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심사까지 끝내야 한다. 한국당 지도부 관계자는 “법사위 숙려기간 5일을 건너뛴다 하더라도 신용정보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물리적으로 29일 본회의 통과가 어렵다”고 말했다. IT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이 여야와 상임위별로 쪼개져 서로 법안을 우선 처리하기만 기다리는 ‘핑퐁게임’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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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에 만장일치 ‘발목’…與는 의지 부족

상임위 법안소위의 만장일치 관행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25일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신용정보법 개정안 통과를 반대한 위원은 11명 중 지 의원이 유일하다. 이날 두 차례의 정회를 거듭하며 논의를 이어갔지만 “개인정보 보호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는 지 의원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법안소위는 만장일치로 결의한다는 ‘초법적 관례’에 발목이 잡히면서 민주당과 한국당 거대 양당은 표결시도조차 포기했다.

상임위 법안소위의 만장일치 의결은 국회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관행이어서 이를 깬 사례도 있다. 지난해 5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할 당시 법안소위에서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반대하자 여야 의원들은 거수 표결로 법안을 의결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데이터 3법이 통과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여당의 의지 부족’을 꼽고 있다. 데이터 3법은 진보단체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입법에 반대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은 14일 “입법절차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내기도 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굳이 지지세력이 반대하는 데이터 3법을 추진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며 “최대한 야당에 입법 지연의 책임을 미루려는 전략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도원/조미현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