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이 13일(현지시간)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 증진을 위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추가로 축소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초 ‘스톡홀름 협상’ 결렬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전략적 발언으로 해석된다.14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제51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참석차 이날 한국행에 오른 에스퍼 장관은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과의) 협상 증진에 도움이 된다면 한국에서 시행하는 미국의 군사 활동을 조정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군사훈련 조정은) 북한에 대한 양보가 아니라 외교와 대화의 문이 열려 있도록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훈련을 조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 측에서 유연한 접근법으로 미·북 협상에 임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며 “에스퍼 장관의 이번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북한은 즉각 반응했다. 미·북 실무협상 북측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같은 날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면 미국과 마주앉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명길은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로부터 다음달 다시 협상하자는 제안을 받은 사실을 공개한 뒤 “미국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만날 의향이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김명길은 대신 미국의 전향적인 태도 전환을 요구했다. 그는 “미국이 지난 10월 초 스웨덴에서 진행된 실무협상 때처럼 연말 시한부를 무난히 넘기기 위해 우리를 얼려보려는(달래보려는) 불순한 목적을 여전히 추구하고 있다면 그런 협상에는 의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이미 미국 측에 우리의 요구사항이 무엇이고 어떤 문제가 선행돼야 하는지 밝힌 만큼 이제는 미국이 해결책을 내놓을 차례”라고 강조했다.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도 이날 담화를 내고 에스퍼 장관의 발언에 대해 “조·미(북·미) 대화 동력을 살리려는 미국의 긍정적인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또 “그가 이번 결정을 남조선당국과 사전에 합의하고 내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조선 정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런 용단을 내릴 인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국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한편 에스퍼 장관은 이날 밤 한국에 도착했다. 그는 15일 국방부에서 열리는 SCM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한·미 군사안보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한국 측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유지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박한기 합참의장과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이날 국방부에서 제44차 한미군사위원회(MCM)를 열고 한반도 안보 상황과 연합방위태세를 점검했다. 양국은 회의 뒤 배포한 보도자료에 “양국 의장은 지역 안보와 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다국적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고 명시했다.이정호/이미아 기자 dolph@hankyung.com
美국방 "연합훈련 조정" 발언에 화답…"대화동력 살리려는 긍정적 노력""비건, 12월 협상 제안…마주 앉을 용의 있지만 근본 해결책 내놓아야"美 오전 시간에 연이어 담화 발표…"종전선언·연락사무소론 가망 없어"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위해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할 의향을 피력한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미국이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할 경우 다시 실무협상을 할 의향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미국이 북한이 비핵화 조건으로 제시한 '안보 우려'를 해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이에 북한이 화답하면서 스웨덴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 이후 한 달 넘게 중단된 북미 대화가 다시 활발해지는 모양새다.김영철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14일 발표한 담화에서 에스퍼 장관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고 믿고 싶으며 조미(북미)대화의 동력을 살리려는 미국 측의 긍정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김 위원장은 "국무위원회 대변인 담화가 발표된 직후 나온 미 국방장관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나는 미국이 남조선과의 합동군사연습에서 빠지든가 아니면 연습 자체를 완전히 중단하겠다는 취지로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다.앞서 한미안보협의회(SCM) 참석차 13일(현지시간) 한국행에 오른 에스퍼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외교적 필요성에 따라 훈련을 더 많거나 더 적게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이 발언은 북한이 먼저 국무위원회 대변인 담화로 한미연합공중훈련을 비난하며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고 경고한 직후에 나온 것으로 미국이 북한의 안보 우려를 고려해 훈련을 축소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실제 한미 군 당국은 오는 15일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연합공중훈련 조정 문제를 최종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김 위원장의 담화가 보도되기 약 1시간 40분 전에는 북미 실무협상 북측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담화를 발표했다.미국을 겨냥한 두 담화는 시차를 고려해 각각 한국시간 오후 9시21분, 오후 11시 4분에 중앙통신에 보도됐다.김 대사는 최근 미측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로부터 다음 달 다시 협상하자는 제안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고 미국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만날 의향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그는 "최근 미 국무부 대조선정책특별대표 비건은 제3국을 통하여 조미(북미) 쌍방이 12월 중에 다시 만나 협상하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전달해왔다"며 "우리는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이 가능하다면 임의의 장소에서 임의의 시간에 미국과 마주 앉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김 대사는 "하지만 미국이 지난 10월 초 스웨덴에서 진행된 조미실무협상 때처럼 연말 시한부를 무난히 넘기기 위해 우리를 얼려보려는(달래보려는) 불순한 목적을 여전히 추구하고 있다면 그런 협상에는 의욕이 없다"고 말했다.그는 "우리가 이미 미국 측에 우리의 요구사항들이 무엇이고 어떤 문제들이 선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명백히 밝힌 것만큼 이제는 미국 측이 그에 대한 대답과 해결책을 내놓을 차례"라고 말했다.이어 "미국이 우리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정세변화에 따라 순간에 휴지장으로 변할 수 있는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 개설과 같은 부차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를 협상에로 유도할 수 있다고 타산한다면 문제해결은 언제 가도 가망이 없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나의 직감으로는 미국이 아직 우리에게 만족스러운 대답을 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며 미국의 대화 제기가 조미 사이의 만남이나 연출하여 시간 벌이를 해보려는 술책으로밖에 달리 판단되지 않는다"며 "다시 한번 명백히 하건대 나는 그러한 회담에는 흥미가 없다"고 말했다.김 대사의 담화에서는 다소 부정적인 톤이 감지되지만, 뒤이어 나온 김 위원장의 담화를 고려하면 북한이 미측의 한미연합훈련 축소 움직임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 다시 협상에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앞서 김 대사는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 직후인 지난달 6일 성명에서 미국이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합동군사연습마저 하나둘 재개했다"며 완전한 비핵화는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물"이 제거돼야 가능하다고 밝혔다.한미 연합훈련이 북한이 지목한 대표적인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훈련 축소는 북한이 원하는 '근본적 해결책'과 맥이 닿는다.한편 김 대사는 비건 대표가 자신과 직접 연락하지 않은 점에 불만을 드러냈다김 대사는 "조미대화와 관련하여 제기할 문제나 생각되는 점이 있다면 허심하게 협상 상대인 나와 직접 연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제3자를 통해 이른바 조미관계와 관련한 구상이라는 것을 공중에 띄워놓고 있는데 대하여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이어 "이것은 도리어 미국에 대한 회의심만을 증폭시키고 있다"며 "미국측이 우리에게 제시할 해결책을 마련하였다면 그에 대해 우리에게 직접 설명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연합뉴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 북한 측 수석대표로 참석한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사진)가 7일 “미국이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으면 그 어떤 끔찍한 사변이 차려질 수 있겠는지 누가 알겠느냐”며 불만을 쏟아냈다.김명길은 이날 오전 평양으로 돌아가는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 서우두공항에서 “이번 회담은 역스럽다(역겹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이 어떻게 제안해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엔 “얼마나 준비가 되겠는지는 미국 측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그는 앞서 지난 5일 미국과 실무협상을 마친 후 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미국은 우리가 요구한 새 계산법을 하나도 들고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계속 중지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이날 북한 태도에 대해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을 써서 금년 중에 미국의 태도 변화를 확실하게 유도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할 때보다 요구 조건이 높아진 것 같다”며 “미국이 ‘선(先) 비핵화’ 논의라면 북한은 ‘선 안전보장 및 경제제재 해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요구 사항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청와대는 ‘노딜’로 끝난 미·북 실무협상에 대해 “지금 평가하기엔 이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화의 문이 완전히 닫힌 상태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북·미가 협상 자리에 앉는 게 중요하다”며 “섣부른 판단은 오해 소지가 생길 수 있다”고 언급했다.정부는 ‘스톡홀름 노딜’을 수습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만나기 위해 7일 미국 워싱턴DC로 떠났다. 이 본부장은 오는 10일까지 워싱턴DC에 머물며 비건 대표로부터 스톡홀름 협상 내용을 공유하고, 후속 대응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