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북미정상회담 이어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일상 속 평화' 성과
'하노이 노딜'·북미대화 교착 후 기로에 선 촉진역…돌파구 마련 절실
강제징용 판결·수출규제에 한일관계 악화일로…해법 마련 주목

"가장 잘한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제거한 것이다.

"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말에 이같이 대답했다.

진영을 막론하고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한반도에 드리운 전쟁의 공포가 걷혔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과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은 물론,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북한의 도발로 일상에 내재해 있던 위협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문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주변국에 기대지 않고 '운전석'에 앉아 남북관계를 주도해 나가겠다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워 남북관계 개선에 속도를 냈다.

[임기 반환점] ② 전쟁위협 사라졌지만…평화프로세스 위한 '촉진역' 험로 여전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문 대통령의 구상은 '베를린 선언'으로 불린 2017년 7월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 잘 나타나 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안보·경제적 우려 해소, 북미관계 및 북일관계 개선 등 한반도와 동북아의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과 함께 북한이 미국에 느끼는 안보상 위협 등을 해소하고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미관계 정상화 등을 위한 대화를 병행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이 있을 때마다 이를 강력히 규탄하면서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원칙을 고수했고, 이 같은 인내는 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참가와 고위급 대표단 방남이라는 극적인 국면 전환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두 달 뒤인 4월 27일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첫 남북 정상회담으로 연결됐다.

[임기 반환점] ② 전쟁위협 사라졌지만…평화프로세스 위한 '촉진역' 험로 여전
회담 결과물인 판문점선언에는 '한반도 비핵화' 문구가 담김으로써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같은 해 9월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폐기하기로 했다.

아울러 미국의 상응 조치를 조건으로 영변 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9·19 평양공동선언에 담는 데 동의했다.

남북관계는 전에 없던 해빙무드를 맞았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열렸고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진행됐다.

제재 해제에 대비한 경의·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이 열리는가 하면, 산림협력도 강화했다.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도 잇따라 비무장지대(DMZ) 남북공동유해발굴 지역 내 지뢰가 제거됐고 시범철수 대상 감시초소(GP)는 완전히 파괴됐다.

동시에 문 대통령은 각종 다자·외교 무대를 통해 가시화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설명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주력했다.

한반도 평화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반도의 봄'을 맞으며 쌓인 남북 정상 간 신뢰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양국 간 대화가 잠시 좌초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26일 판문점에서의 2차 남북 정상회담으로 직접 꼬인 실타래를 풀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중재 노력은 같은 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을 가능하게 했다.

[임기 반환점] ② 전쟁위협 사라졌지만…평화프로세스 위한 '촉진역' 험로 여전
그로부터 1년 뒤인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미 정상회동은 그 자체만으로 '톱다운' 외교를 통한 한반도 평화의 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인 만남도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뒤로 이어진 교착 양상을 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답방 등 4차 남북 정상회담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지만 북한은 좀처럼 호응하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문 대통령을 향해 비방까지 하며 분위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나아가 북미가 지난달 스웨덴에서 우여곡절 끝에 실무협상을 재개했으나, 진전을 보지 못하면서 문 대통령의 '촉진역'은 가시밭길을 만난 모양새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연말까지 '새로운 셈법'을 제시하라고 압박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으로서는 또다시 북미대화를 견인할 창의적 해법을 모색, 남북미 관계의 '선순환'을 되살려야 하는 상황이다.

북미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된 것도 문 대통령에 놓인 난관이다.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의 '무중계·무관중' 평양 원정, 김 위원장의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지시, 문 대통령 모친상에 조의문을 보낸 지 하루만의 발사체 발사 등 남북관계는 녹록지 않다.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우려까지 제기되는 가운데 현 상황이 장기화하면 비핵화 국면에서 문 대통령이 운신할 폭은 더 좁아질 수 있다.

다만 남북미 정상 모두 갈등이 고조되는 것을 피한 채 상황을 관리하며 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어 '반전'의 기회는 언제든 열려있다.

[임기 반환점] ② 전쟁위협 사라졌지만…평화프로세스 위한 '촉진역' 험로 여전
지난 5월 이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잇따르고 있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여전히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신뢰하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의 모친상에 김 위원장이 조의문을 보낸 것도 정상간 '최소한의 신뢰'가 유지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연내에 북미를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게 하는 데 공을 들일 전망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일 국회 운영위 국감에서 "비핵화 진전이 기대보다 더디지만 북미 정상 간 신뢰에 기반한 톱다운 구도는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북미의 견해차를 좁힐 중재안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는 비핵화 로드맵에 북미가 합의한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한두 번의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북미 양측으로부터 긍정적 반응이 없어 문 대통령으로서는 '창의적 해법'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문 대통령이 북한·미국과의 관계를 넘어 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열강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도 관심사다.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면 이들 국가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 방문과 함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일련의 양자 정상회담으로 이전 정부에서 무너진 '4강 외교'를 신속히 복원했다.

전임 정부가 숙제로 남겼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를 두고 중국과의 갈등을 봉합한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현 상황에서는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과 이에 따른 대(對)한국 수출규제로 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일관계 개선이 '발등의 불'이라 할 수 있다.

[임기 반환점] ② 전쟁위협 사라졌지만…평화프로세스 위한 '촉진역' 험로 여전
한미일 안보협력 약화 우려 속에서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는 등 문 대통령은 일본의 보복성 조치에 단호히 대응해 왔다.

한편으로는 대화의 문을 열어두면서 과거는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투트랙 외교' 원칙을 통한 해법을 모색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일왕 즉위식 계기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회담한 이낙연 국무총리를 통해 '이대로는 안 된다'는 현실 인식에 공감대를 이뤘다.

다음 달 한중일 정상회의가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 자리가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문제는 관계 악화의 원인이 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접점을 어떻게 찾느냐다.

양국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1+1'안 등이 나왔지만 양측의 이견 조율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때문에 민감한 외교 현안을 '봉인'한 후 시간을 두고 대책을 '논의'하는 '사드식 해법' 등이 대안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