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2016년 12월 25일 성당 미사를 위해 강한옥 여사의 손을 잡고 부산 영도의 모친 자택을 나서고 있다. /한경DB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2016년 12월 25일 성당 미사를 위해 강한옥 여사의 손을 잡고 부산 영도의 모친 자택을 나서고 있다. /한경DB
문재인 대통령의 어머니 강한옥 여사가 29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강 여사는 노환에 따른 신체 기능 저하로 건강이 악화돼 최근 부산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오후 7시6분 숨을 거뒀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기 수원에서 열린 ‘2019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를 마친 직후 헬기를 타고 이동해 강 여사의 임종을 지켰다. 문 대통령은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가족들과 차분하게 치를 예정이며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3일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고 대변인은 “청와대 직원들도 단체로 조문을 간다든지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일반인이 됐든 관계자 분들이든, 조문과 조화는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1927년 함경남도 함주 출신인 강 여사는 피란민의 아들을 대통령으로 키운 강인한 어머니였다. 함남 함흥시청 농업과장을 지낸 남편 문용형 씨와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경남 거제로 피란했다. 문 대통령은 거제도 시절이던 1953년 낳은 큰아들이다. 문 대통령은 올 추석 연휴 때 한 방송사의 라디오방송에서 당시 외가는 흥남시 성천강 만세교 북쪽에 있었는데 전쟁 중에 이 다리가 차단돼 외가에서는 강 여사만 홀로 피란했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모친은 피란살이가 너무 힘들어 도망가고 싶을 때가 여러번이었는데 남한 천지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도망을 못 가셨다고 한다”고 말했다. 강 여사도 생전 인터뷰에서 “피란 와서 명절을 맞는데 달밤에 고향 생각이 간절해서 눈물이 나더라. 요즘도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잊혀지지 않는 게 고향이더라”고 망향의 애절함을 보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2004년 7월 열린 제1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모친과 함께 참석한 것을 “최고로 효도한 일”이라고 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모친 강한옥 여사(92)의 임종을 지킨 뒤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부산의 한 병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모친 강한옥 여사(92)의 임종을 지킨 뒤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부산의 한 병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강 여사는 문 대통령이 일곱 살 때 부산으로 이사한 뒤 계란행상, 연탄배달 등을 하며 사실상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거제에서 달걀을 싸게 사서 머리에 이고 어린 문 대통령을 업은 채 부산에 건너가 파는 행상일로 돈을 모아 부산으로 이사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문 대통령의 교육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검댕을 묻히는 연탄배달 일이 창피했다. 오히려 어린 동생은 묵묵히 잘도 도왔지만 나는 툴툴거려서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끄는 연탄 리어카를 뒤에서 밀면서 자립심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가난 속에서도 돈을 최고로 여기지 않게 한 어머니의 가르침은 살아오는 동안 큰 도움이 됐다”고 적었다.

강 여사는 생전에 2017년 대선 직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아들은 예측가능한 앱니더. 지갑이 얇으면 얇은 대로, 두꺼우면 두꺼운 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또 “잘난 사람은 세상에 많지만 재인이는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로 착해서 ‘저래 가지고 세상 살겠나’ 싶었다”고 술회했다. 강 여사는 그동안 문 대통령의 여동생인 재실씨가 영도에서 함께 살며 모신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1월 출간된 인터뷰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문 대통령은 “평화통일이 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아흔인 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 고향을 찾아 외가의 뿌리를 찾아보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강 여사의 선종으로 이루지 못한 소원으로 남게 됐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