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주한미군 관련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내년부터 적용될 방위비 분담금 수준을 결정할 양국 대표단 간 첫 협의를 몇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미국은 올해(1조389억원)보다 대폭 증액된 분담금을 한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이 이날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자동차 분야 합작투자 등 약 14조원에 달하는 ‘선물 보따리’를 푼 만큼 향후 협상에서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한·미 방위비 분담금 문제도 논의했다.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합리적 수준의 공평한 분담을 강조했다”며 “문재인 정부 들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국방예산 및 미국산 무기 구매, 분담금의 꾸준한 증가 등 한·미 동맹 등에 기여한 노력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한국의 군사장비 구입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은 논의를 할 것”이라며 “한국은 미국의 최대 군사장비 구매국이다. 우리는 굉장히 그동안 잘 논의해 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발언이 실제 무기 구매를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몇 시간 뒤 열릴 예정이었던 양국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국을 몰아붙이기 위한 카드였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무기 구매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중 양자택일하라는 식의 전략”이라며 “어떤 쪽을 선택하든 미국의 바람대로 한국이 비용을 더 부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은 24일 서울에서 제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첫 협의를 벌였다. 6시간여 진행된 이날 회의에는 한국 측에서 장원삼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대표와 외교부·국방부·기획재정부·방위사업청 관계관이, 미국 측에선 제임스 디하트 국무부 방위비분담 협상대표와 국무부·국방부 관계관이 참석했다.

향후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주한미군을 운용하는 직·간접 비용으로 연간 50억달러(약 6조원) 안팎의 예산이 소요되는 데 비해 한국이 부담하는 몫(올해 1조389억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논리로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은 한국이 올해보다 최소 두 배는 더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선을 위해 ‘한국 청구서’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있는 만큼 협상에 험로가 예상된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