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실무협상 앞두고 美와 샅바싸움…체제안전·제재완화 의제화
북한이 16일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을 앞두고 '체제 안전 보장'과 '제재 해제'라는 의제를 동시에 들고나오면서 장외 신경전에 시동을 걸었다.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에 발표한 담화에서 "우리의 제도 안전을 불안하게 하고 발전을 방해하는 위협과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비핵화 논의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이번 담화에서 추상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선후 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았지만, 미국에 비핵화에 따른 상응 조치로 체제 안전보장과 대북제재 해제 또는 완화를 요구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비핵화의 최종상태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거기에 도달하는 로드맵을 그려나가야 한다는 이른바 '빅딜'을 주장하는 미국을 향해 그 대가로 어떤 조치를 해줄 수 있는지 구체적인 안을 들고 오라고 주문한 셈이다.

이에 따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그의 카운터파트로 알려진 김명길 전 주베트남 북한대사가 조만간 실무협상을 시작한다면 비핵화 정의와 방식, 그에 따른 상응조치를 어떻게 배합할지를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바라는 체제안전 보장방안이 무엇인지 현시점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나 한미군사훈련 중단 등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재 문제는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요구했다가 퇴짜를 맞은 사실상의 완전한 해제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다룰 의제를 공개 제안한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을 향해 "제재해제 문제 따위에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며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한 이후 처음이다.

북한이 다섯달 전 공개적으로 '제재 해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다시 제재 문제를 꺼내 들었다는 점에서 차기 실무협상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이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하는 대가로 제재를 완화해달라는 북한의 요구를 거절했던 만큼 제재 부분에서는 여지를 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북한이 실무협상 재개를 제안한 이후인 지난 13일(현지시간) 북한의 통제를 받는 3개 해킹그룹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면서 "우리는 미국과 유엔의 기존 대북제재를 계속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과 실무협상에 나설 비건 대표가 지난 7월 "북한에 대해 유연해질 여지가 있다"며 ▲인도주의적 지원 ▲인적 대화 확대 ▲서로의 수도에 주재하기 등을 거론한 점을 고려하면 협상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깜짝' 회동한 직후 "제재는 유지되지만, 협상의 일정 시점에(at some point) 어떤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은 지난 4일(현지시간) 대북 금융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내년도 국방수권법안(NDAA)과 관련해 상·하원 국방위원회 지도부에 보낸 서한에서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대통령의 권한 강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예산관리국은 "새로운 대북제재 조항은 주요한 우려 사안"이라며 "보다 유연하고 신중한 (제재) 이행을 할 수 있도록 수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하는 대통령에게 더 큰 '자율성'이 필요하다는 취지라는 해석이 나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