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상태 미·북 실무회담 이달 말 재개 유력

트럼프 "만남은 좋은 것
무슨 일 일어날지 지켜보자"
북한이 미국에 이달 하순 대화 재개를 제의하며 ‘새로운 계산법’을 다시 강조했다.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보장하고, 유엔 대북제재를 풀어달라는 기존의 주장을 더욱 세게 밀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북한이 지난 2월 말 ‘하노이 회담’ 결렬을 교훈 삼아 전격적으로 핵사찰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이달 하순께 미·북 협상을 제안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긍정적인 반응을 내면서 이르면 이달 말 양국의 비핵화 실무협상이 재개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30일 판문점 회담 때 만나 악수하고 있다.    /한경DB

북한이 이달 하순께 미·북 협상을 제안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긍정적인 반응을 내면서 이르면 이달 말 양국의 비핵화 실무협상이 재개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30일 판문점 회담 때 만나 악수하고 있다. /한경DB

北, 핵사찰 수용 가능성 제기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9일 밤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 측이 조·미(북·미) 쌍방의 이해 관계에 다같이 부응하며 우리에게 접수 가능한 계산법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을 거론한 것이다. 당시 김정은은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시한을 정했다. 또 “미국이 지금의 정치적 계산법을 고집한다면 문제 해결의 전망은 어두울 것이며, 매우 위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내세우는 ‘새로운 계산법’이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대북제재 완화 또는 해제라고 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정식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나라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뿐이다. 그 외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비공식 인정되는 국가는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이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당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미국에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테이블을 박차고 나온 뒤 “북한이 공개하지 않은 추가 시설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이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전격적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받아들이거나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다시 가입하는 대신 핵 동결부터 하자는 ‘통 큰 전략’을 내밀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정도 조건은 제시해야 미국과의 협상에서 대북제재를 풀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명길 전 베트남 주재 북한 대사

김명길 전 베트남 주재 북한 대사

미·북 실무회담 장기전 예상

미·북 실무협상이 이달 중 열릴 것으로 기정사실화되면서 양측이 언제 어디서 만날지 관심이 집중된다. 미 국무부는 9일(현지시간) “이 시점에 발표할 어떤 만남도 갖고 있지 않다”고 전했지만, 실무협상 개최 자체를 부인하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미·북이 “만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측에선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북한에선 김명길 전 베트남 대사가 각각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김명길은 하노이 회담 때 비건 대표의 카운터파트였던 김혁철 대미특별대표의 후임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일단 유럽 등지의 제3국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스티븐 비건 美 대북정책 특별대표

스티븐 비건 美 대북정책 특별대표

1, 2차 실무협상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차원의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엔 구체적 의제들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대북정책 전문가는 “미국과 러시아 간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 폐기되면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에 미사일을 배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북한이 이를 빌미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을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건 대표가 최근 한·일 핵무장론을 언급한 배경도 이 같은 동북아 안보 정세 변화를 거론하며 미국의 아시아 정책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북한에 경고한 것이라고 이 전문가는 덧붙였다.

통미봉남은 계속될 듯

미·북 협상 재개가 남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최근 공식 담화와 선전매체 등을 통해 미·북 대화와 남북관계는 별개라며 통미봉남(通美封南: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협상)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달 16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측이) 앞으로의 조·미 대화에서 어부지리를 얻어보려는 미련은 미리 접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9·19 평양 정상회담 공동선언 합의 등 지난해 이뤄진 굵직한 남북관계 성과가 1주년을 맞지만, 공동 기념행사는 치러지지 않을 예정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문재인 정부에 실망을 많이 한 상태”라며 “앞으로 남북관계와 관련해 우리 정부의 역할은 더 이상 없다고 신호를 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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