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건립 앞장선 박은덕 호주 변호사
"여성이 남성과 똑같아지는 게 성평등 추구 본연 목적은 아냐"

"여성이 남성과 똑같아지는 것이 성 평등 추구 본연의 목적은 아닙니다.

"
한인 1.5세 박은덕(57) 변호사는 청주에서 열린 제19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KOWIN) 대회 둘째날인 28일 글로벌 여성리더 포럼에서 '여성으로서 찾아온 평등한 사회'라는 주제 발표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 변호사는 지난 2016년 호주 시드니 에쉬필드 연합교회 앞마당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는 데 발 벗고 나섰다.

그는 "성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모두 인간답게 살기 위함"이라고 일갈했다.

기자는 다음 날 박 변호사를 따로 만났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와 일본군 위안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그로 인해 평화운동을 펼친 사연과 과정 등을 1시간여 풀어놓았다.

중학생 때인 1977년 가족과 함께 호주에 이민했다.

성차별을 인지하기도 전에 인종차별을 먼저 경험하며 청소년기를 이국땅에서 시작했다.

부족한 영어 실력과 배움의 열의가 부족했던 대학 생활은 그를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에 더 관심을 쏟게 했다.

호주에서 '해외동포 민주화 운동'에 참가했다.

그는 당시를 "내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사람답게 살 기회를 박탈하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1987년 호주 한인복지회에서 한인 이민자를 위해 사회복지사로 2년간 일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성 평등' 차원에서의 접근은 거의 없었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남편과 결혼한 그는 로스쿨을 다녔고, 함께 변호사가 돼 1995년 부부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얼마간 변호사, 가정주부, 엄마로 1인 3역을 하며 소시민적으로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늘 무엇인가 그를 짓누르고 있었고, 이민 여성으로서 고민도 많았다.

"일과 가정이 안정을 찾으면서 가족을 넘어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했어요.

2002년 초 한인 여성들의 인권과 성 평등 지향 사회를 추구한다는 '거창한' 목표 아래 '재호한인여성포럼'을 창립했죠. 여성학 공부방 등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한계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
이 포럼은 계속 이어나갈 수가 없었고 대신 시드니 한인회에 들어가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부터 2년간 부회장을 맡으면서 그는 연방 정부와 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고, 훗날 '평화의 소녀상' 건립의 기반을 다져놓는다.

그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둔 것은 고인이 된 장점돌 할머니의 호주 강연을 듣고부터다.

간헐적으로 듣고 피상적으로 알았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이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싱가포르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온갖 고초를 겪은 얀 뤼프-오헤르네 할머니를 위해 호주에서 활동하는 한인 송애나 씨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호주친구들'을 결성해 대표를 맡았다.

그는 미국 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하는 것을 보고 호주에서도 결의안 채택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일본 정부의 전방위 로비에 무너지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호주에서 일본과 싸움은 다시 시작됐다.

2015년 '평화의 소녀상' 시드니 설치를 놓고 벌어졌다.

'노숙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빌 크루 목사의 지원에 힘입어 일본의 방해 공작을 물리치고 2016년 8월 9일 마침내 소녀상을 세웠다.

그는 제9기 KOWIN 호주지역 담당관에 임명됐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성 평등 사회를 위해 학습하고 토론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온라인 공부방 개설, 온라인 정기간행물 발간 등을 통해 성 평등에 대한 원론적인 이해 교육을 할 예정이다.

아울러 호주 국회에 얀 할머니 기일인 8월 19일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날'로 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인도네시아 일본군 수용소 이야기를 다룬 단편영화 '데일리 브레드'(Daily Bread)를 제작한 얀 할머니의 손녀가 다시 장편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에 그는 크라우드펀딩을 추진해 제작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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