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이 7일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중거리 미사일 배치 등 최근 안보 분야에서도 미국의 요구가 연거푸 나오면서 정작 북한보다 한국이 지나친 압박에 시달리는 모양새라는 우려가 나온다.

방위비, 내년엔 6배 인상될 수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미국에 대한 (분담금) 지급 규모를 더 늘리기 위한 협상이 시작됐다”며 “한국은 매우 부유한 국가로,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방어에 기여하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미국에 현저히 더 많은 돈을 내기로 합의했다”며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은 한국에서 매우 적은 돈을 받았지만 작년에는 내 요구에 따라 한국이 9억9000만달러를 지급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국 관계가 매우 좋다”는 ‘립서비스’도 빼놓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마크 에스퍼 신임 미국 국방장관의 9일 한국 방문에 맞춰 나왔다. 에스퍼 장관의 취임 첫 방한부터 안보 청구서를 내밀 것이라는 예고편을 날린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공개적으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해왔다. 지난 6월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찾았을 때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위비 분담금 인상 필요성을 언급했다. 최근 방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역시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시작도 안 했는데 증액 합의?

트럼프 "韓 방위비 분담금 증액 협상 시작"…쌓이는 美 '안보 청구서'
외교부는 일단 진화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에 대해 “양국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향으로 방위비 분담 문제를 협의해나가기로 했다”며 “협상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아직 협상팀을 꾸리지도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상대방의 기를 꺾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압박이 시작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국의 지난해 분담금은 9602억원이었다. 올해 분담금은 이보다 8.2% 인상한 1조389억원으로 책정해놨다. 그러나 유효기간이 1년에 불과해 내년도 분담금에 대해선 미국과 다시 협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측의 증액 요구 수준이 올해 분담금의 여섯 배 수준인 50억달러(약 6조1000억원)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北,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 공개 > 북한은 지난 6일 새벽 황해남도 과일군 서부작전비행장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신형전술유도탄을 발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 北,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 공개 > 북한은 지난 6일 새벽 황해남도 과일군 서부작전비행장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신형전술유도탄을 발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미사일 배치에 파병 요구까지

미국의 군사 분야 압박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구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6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국으로부터 우리 군에 대한 호르무즈 해협 파병 구두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은 중거리 미사일 배치 지역으로 한국을 간접적으로 거론하며 미사일 방어체제(MD)에 한국이 동참할 것도 압박하고 있다. 볼턴 보좌관은 6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에 대해 “(아시아 주둔) 미군과 한국, 일본 등 동맹국 방어를 위한 것”이라며 “중국은 이미 수천 개의 미사일(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해놨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직접 말한 건 아니지만 중국의 위협에 대한 방어를 거론하며 한국과 일본을 콕 집어 지목한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의 외교정책 우선순위에 북한과 중국이 들어가 있지만 한국은 소외된 것 같다”며 “한국 정부가 무리한 요구는 강하게 어필하는, 적극적이고 신중한 외교 전략을 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임락근/심은지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