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베트남 전쟁(1960~1975)’은 금기어에 가깝다. 통일이라는 명분 아래 동족끼리 총뿌리를 겨눴던 비극을 어느 누구도 들춰내려하지 않는다. 하노이 땅을 밟은 지 며칠 안되는 한국인이 간혹 ‘과거사’를 꺼내기라도 하면 좌중은 어색함에 압도되곤 한다. 사석에서 만난 한 베트남 관료는 그들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베트남에서도 철없는 전후 세대나 전쟁을 입에 올린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적색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치뤄진 베트남 전쟁은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으로 남아 있다. 핵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무기가 총동원했다. 수백만명의 무고한 인명이 살상됐다. 인간은 자신의 폭력성을 전쟁을 통해 여과없이 드러냈다. 베트남과 미국 모두 그들의 뇌리에서 전쟁의 기억을 없애고 싶어할 정도다. 베트남 전쟁은 기억해야 할 전쟁이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쟁이다.
[박동휘의 베트남은 지금] 베트남전으로 번진 한일 과거사 논쟁
베트남 전쟁이 금기화된 또 다른 이유는 자칫 분열의 불씨가 될 수 있어서다. 전쟁은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점령함으로써 끝났다. 수많은 전투가 치뤄진 곳은 중부 지방이다. 한국인에겐 주로 관광지로 알려진 다낭, 후에 등 해안가 도시에서 베트남의 잘록한 허리를 관통하는 비무장지대(DMZ) 인근이 전투의 주요 무대였다. 베트남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전쟁을 기억하고 있음은 각지의 전쟁박물관에 가보면 알 수 있다.

미 해병대가 첫발을 디뎠던 다낭은 전쟁으로 인해 그 전까지 있던 모든 것들이 잿더미가 된 곳이다. 이 곳의 전쟁박물관에 전시된 사진과 유품은 참혹함 그 자체다. 베트남 전쟁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다낭 전쟁박물관에 다녀오면 충격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에 비해 하노이 전쟁박물관은 치열했던 북베트남 정규군의 활약상을 선전하는 전시장이다. 미군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지하 방공호 속 북베트남인들의 생활상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과거 사이공으로 불리던 호치민시의 전쟁박물관은 ‘인류와 전쟁’이라는 좀 더 폭넓은 프리즘으로 전시물을 보여주고 있다. ‘레퀴엠’이라는 주제로 종군 기자들의 사진을 모은 전시를 본 적이 있는데 박물관은 전쟁의 참상을 가급적 절제되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전달하려고 했다.
[박동휘의 베트남은 지금] 베트남전으로 번진 한일 과거사 논쟁
베트남 전쟁은 우리와도 밀접하다. 총 6차례에 걸려 약 31만명의 군인이 베트남 최전선에 파견됐다. 당시 전투 부대를 파병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등 5개국뿐이었다. 개발도상국이던 한국, 필리핀, 태국 등은 전쟁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전쟁 중에 미군 휴양지로 활용된 필리핀은 미군들이 쏟아내는 달러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받아냈다. 이를 위해 필리핀 정부는 그들의 여성을 가정부로, 남성은 팝송을 흥얼거리는 통기타 가수로 내몰았다. 한국도 파병의 대가로 미국의 원조를 얻어냈다. 일부는 위정자들의 지갑으로 흘러갔지만, 대부분이 고속도로를 짓고, 공장을 세우는데 쓰였다. 베트남 전쟁은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한 시원(始原)이나 다름없었다.

베트남 전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지는 꽤 논란이 많은 주제다. 특히 ‘과거의 눈’으로 봤을 때 그렇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전쟁으로 기억하는 이들에게 한국의 파병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한국은 참전의 대가로 많은 과실을 얻었다. 반면, 한국을 가해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상당수다. 실제 베트남 중부 지방엔 한국군을 잊지 말자는 이유로 세워진 ‘증오비(碑)’가 세워져 있다. 참혹한 전장에서 용맹과 잔혹함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단순화의 위험이 있긴 하지만, 보수를 지향하는 정부는 베트남에 대해 고마워 하는 감정을 더 크게 갖고,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는 미안함이 더 크다. 1998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한-베트남 정상회담에서 “우리 두 나라 사이에 한때 불행한 시기가 있었다”고 처음으로 과거사를 언급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4년 ASEM 정상회의를 계기로 베트남에 국빈 방문했을 때 우리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과거사에 대해 사과 발언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베트남전을 ‘미안함’의 시선에서 바라본다. 지난해 3월 하노이 국빈방문 당시 문 대통령은 쩐다이꽝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 앞선 머리발언에서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한·일 과거사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베트남 전쟁 역시 재조명받고 있다. 일본에 당당하게 사죄를 받아내고, 보상을 받으려면, 우리도 베트남 전쟁에 대해 사과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해야한다는 논리다. 최근 민변이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피해자를 위해 소송을 준비 중인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 내 이런 움직임에 대해 하노이의 기류는 어떨까. 고마움보다는 불편함이 역력하다. 한 전직 외교관은 “지난해 문 대통령이 국빈 방문했을 때도 베트남 정부에선 유감 발언을 넣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었다”고 귀띔했다.

베트남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는 ‘실용주의’다. 그들은 누구와도 적대하지 않으려 하고, 자국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과거의 적이건 현재의 적이건 손을 잡는다. 같은 맥락에서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더 지향한다. ‘과거의 눈’과 ‘이념의 시선’으로 베트남을 대하려다간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우(憂)를 범할 지 모른다.

박동휘 하노이 특파원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