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외교·안보 사안…법원, 정부의견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이 상식"
“국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외교 사안에선 사법부가 외교부의 입장을 존중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게 관행입니다.”

김영원 전 한·일 청구권협정 전담 대사(사진)는 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전 대사는 “미국 정부가 대만과의 방위조약을 종료한 것에 대해 반발한 미국 의회가 이 결정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지만 미국 법원은 판단을 회피했다”며 해외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김 전 대사(외무고시 12회)는 독도 관련 영유권 공고화사업 지원 대사, 동해 표기 문제 관련 국제표기명칭전담 대사, 네덜란드 대사 등을 지낸 국제법 전문가다. 2011년 헌법재판소가 “청구권협정으로 일본군 위안부 배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정부가 역할을 안 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데 대한 후속조치를 위해 과거 정부가 꾸린 ‘청구권협정 대책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았다.

김 전 대사는 “‘사법자제의 원칙’은 거의 모든 나라의 사법부에서 지켜져 온 오래된 전통”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은 법원이 외교 문제나 국제법과 관련된 재판을 맡은 경우 외교부에 ‘행정부 확인서’를 보내 입장을 요청하는 게 관행이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국제 조약을 해석할 때 관련 협상과 이행 전 과정을 책임지는 정부의 해석에 큰 비중을 둔다는 게 김 전 대사의 설명이다. 그는 “국가 내부에서 삼권분립은 중요하지만 대외적으로는 하나의 통일된 의견을 제시하는 ‘한목소리 원칙’이 외교 무대에서 통하는 상식”이라고 덧붙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강제징용 판결을 내리기 전 외교부와 상의한 것을 두고 ‘재판거래’로 규정하는 시각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김 전 대사는 “대법원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의견을 들은 뒤 사회적 맥락이나 대외적 상황을 고려해 판결을 내린다”며 “다른 나라에선 관행으로 자리잡은 부처 간 의견 교환을 불법이라고 보고 관련자들이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는 상황은 국제적으로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