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경제 보복’의 칼을 뽑은 지 7일로 사흘이 지났다. 청와대의 대응 전략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의 보복조치에 대한 맞대응을 자제하면서 자유무역 원칙이라는 명분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 차원의 특사 파견 등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정치·경제의 분리와 함께 냉정한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청와대에서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과 일본 대표단을 만나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정치·경제의 분리와 함께 냉정한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청와대에서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과 일본 대표단을 만나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문 대통령, 3대 대응 원칙 강조

청와대는 지난 4일부터 시행된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3개에 대한 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두 가지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의에 ‘급소’를 기습당한 것에 대해선 기업을 도와 즉각 대응하되, 국제사회에서의 명분 싸움에서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으므로 ‘정치적 대응’은 삼가자는 판단이다.

외교부가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를 국제법 위반이라는 논리로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외교부 관계자는 “다자회의 등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부당함을 적극 홍보할 계획”이라며 “국제사회에서 자유무역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유럽연합(EU)·중국 등과의 연대를 위한 외교적 노력에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세 가지 대응 원칙을 강조했다”며 “정치적으로 대응을 자제하고, 경제 보복으로 피해를 본 기업을 도울 땐 특혜 논란을 의식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부품·소재 국산화를 위한 중장기 대책도 주문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날 현대자동차, SK, LG그룹의 총수와 오찬 간담회를 한 데 이어 문 대통령이 10일 30대 그룹 총수들을 청와대에 초청키로 한 배경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의 보복조치에 감정적으로 맞서 일본산 제품의 수입규제 등 맞대응을 할 경우 상황을 악화시킬 뿐 실익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외교부 안팎에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랜 전통인 정·경 분리 원칙을 깨고 경제 보복을 감행하면서 국제사회의 시선도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도 총리실과 관료 집단 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일본은 대외적으로 늘 한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이견이 가려져 있다”며 “경제산업성 관료들만 해도 일본이 자유무역 질서를 해치는 주범으로 각인될 수 있다며 총리실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중재위 설치 카드 수용할까

전문가들은 그러나 청와대의 ‘냉정한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정치적 행위’에 경제논리로만 대응하다간 애꿎은 기업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일본 측이 지난 5월 제안한 중재위원회 설치안(案)을 우리 정부가 수용할지도 관심이다.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르면 양측은 중대한 변화가 발생할 경우 외교적 협의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으면 중재위를 설치해야 한다. 18일이 중재위 설치에 관한 최종 시한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경제 보복 이전까지 사실상 거부 방침을 밝혔으나 최근 들어 기류가 바뀌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3일 국회 답변에서 중재위원회 구성과 관련, “모든 옵션을 상황 진전에 따라 고려해볼 수 있다”고 다소 유연해진 톤으로 답변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 징용자 배상 판결 이후 최근까지만 해도 청와대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주일대사를 지낸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사법부가 판결했으므로 행정부는 어쩔 수 없다는 논리는 국제사회에서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사 파견 가능성도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물밑에선 특사 파견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재위나 국제중재재판소(ICJ)에 가서 결론을 내는 것도 양국에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며 “한·일 정상이 매듭지어야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비공식 특사로는 김상조 실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재계의 의견을 두루 경청한 데다 경제 논리로 대응한다는 청와대 방침에도 적합하다는 평이 나온다.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낸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후보군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문(文)의 브레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일본통이다.

일각에선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히든카드’로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아베 총리는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이 배제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며 “북핵 협상 과정에서 일본이 원하는 역할을 제공하는 것을 당근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박재원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