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은 나라를 지키고, 국민은 軍을 지킨다

軍에 혼선 주는 청와대
예비역 장성들의 탄식
“정치가 군(軍)을 좀먹고 있습니다.” 한 예비역 고위장성의 하소연이다. 북한 목선의 ‘대기 귀순’은 그 결과물일 뿐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지휘관을 맡았던 또 다른 장성은 25일 “이념으로 무장한 정치 공세 앞에 서서히 잠식된 군기(軍紀)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군 전문가들은 ‘목선 사태’를 빌미로 군대를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경계작전에 임하는 ‘용사들의 눈’을 흐리게 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6·25전쟁 제69주년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앞줄 오른쪽 네 번째)와 정경두 국방부 장관(두 번째),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첫 번째) 등 한·미 양국의 정부 및 군 고위관계자들과 ‘1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고(故) 김영옥 대령의 조카 다이앤 맥매스 등 유공자와 가족들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6·25전쟁 제69주년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앞줄 오른쪽 네 번째)와 정경두 국방부 장관(두 번째),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첫 번째) 등 한·미 양국의 정부 및 군 고위관계자들과 ‘1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고(故) 김영옥 대령의 조카 다이앤 맥매스 등 유공자와 가족들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북한 목선의 대기 귀순은 일선 군 지휘관들이 우려해왔던 바를 단번에 현실화했다. 군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9·19 남북군사합의가 체결되고 나서 가장 걱정한 게 2012년 ‘노크 귀순’ 사건의 재발”이라고 말했다. 남북한은 상호 합의에 따라 공동으로 GP(감시초소)를 없애고, 지뢰도 제거했다. 2012년의 일이 반복되기라도 한다면 군은 비무장지대(DMZ) 무력화라는 비난에 시달릴 터였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군 수뇌부가 끊임없이 군기 확립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5월 전군지휘관회의에서 정 장관은 교육훈련강화 방안을 주문했다. 일과 후 휴대폰 사용 허용 등 병영문화 개선이 성공하기 위해선 빈틈 없는 안보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그럼에도 군은 대기 귀순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 말았다. 한 예비역 해군 장성은 “육안으로 다 확인하기 어렵고, 레이더로 모두 잡을 수 없다는 점을 십분 이해한다”면서도 “해군 역사상 이런 정도까지 북한의 선박이 (제지 없이) 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군은 수많은 결함을 드러냈다. 한 예비역 대장은 “자세한 것은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 것”이라면서도 “상황 발생 후 군 지휘부는 기민한 대처 능력, 사건의 파장을 예상하는 전략적인 안목 등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국방부와 합참 모두 누군가의 판단을 기다리고, 거기에 의존하는 듯한 경향을 보였다”고 했다.

“누가 군을 약하게 하고 있나”

군 전문가들은 1~2년 사이 안보 기초가 서서히 무너진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군에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스톡홀름 스웨덴 의회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신뢰’를 주제로 연설하며 이렇게 말했다. “남북 간의 평화를 궁극적으로 지켜주는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대화입니다.” 국방일보는 이 발언을 다음날 1면 머리기사로 대서특필했다.

전군 지휘관들의 책상 위에, 장병 내무반의 침상 위에 그 신문이 15일 아침 배달됐다. 북한 목선이 군·경의 경계망을 유린하며 삼척항 부두에 접안한 게 15일 오후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방부 정책실장(예비역 중장)을 지낸 류제승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은 “문 대통령은 지난해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군인들에게 ‘힘을 통한 평화’를 주문했었다”며 “(스톡홀름 연설은) 군의 정신무장을 이완시킬 수밖에 없는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5월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은 “김정은은 자유민주 사상에 접근한 상태”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 핵과 화생무기를 뺀 재래식 군사력은 위협이 아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방수장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군 전체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군의 독립성이 훼손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 언론 자료는 청와대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며 “전 정부 때보다 간섭의 강도가 훨씬 세다”고 말했다. ‘정치 군인’의 관행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청와대와 여당이 육사 출신을 고사시키려 한다’는 말도 나온다.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은 ‘공관병 갑질’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2심까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청와대는 북한 목선에 대한 국방부의 ‘거짓 브리핑’을 “군당국의 안일함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한 예비역 대장은 “정치권은 군을 자신들의 ‘이념적 프레임(틀)’에 가둬 놓기에 바쁘다”고 지적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북한 선박 삼척항 입항 은폐 조작 진상조사단’과 함께 24일 해군1함대사령부를 방문했다가 제지당했다. 군 관계자는 “조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청와대를 공격하기 위해 군을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목선 사태’의 여파가 자칫 국방개혁의 후퇴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군 앞에 놓인 당면과제는 불가역적이라 할 만큼 시급하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목선 사태가 여야의 정쟁 대상이 되면 결국 군 지휘관들은 경계 태세 강화를 이유로 철책과 해안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예비역 장성은 “북한 목선 사태를 군이 거듭날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군에 대한 비방과 비난은 자학이며, 북한만 웃게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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