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장관, 뒤늦게 "엄중 문책"…野 "사퇴해야"

사흘간 제지 없이 마음껏 항해
NLL 넘어 엔진 끈 北 어선
날 밝기 기다렸다가 삼척항 접근
정경두 국방부 장관(가운데)이 19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2019년 전반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한기 합참의장, 정 장관, 서욱 육군참모총장.  .연합뉴스

정경두 국방부 장관(가운데)이 19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2019년 전반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한기 합참의장, 정 장관, 서욱 육군참모총장. .연합뉴스

국방부가 지난 15일 발생한 북한 어선 귀순 과정에서 해안경계 태세의 실패 책임을 피하기 위해 거짓 발표한 정황이 나타났다. ‘북한 선박이 표류해 삼척항 인근까지 내려왔다’는 당초 설명과 달리 북한 선원들이 남하 의도를 갖고 기동했고, 삼척항에 직접 접안해 우리 주민들과 접촉한 사실도 드러났다. 국방부가 언론 보도가 나온 뒤 뒤늦게 이를 시인했지만 문책을 피하기 위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위장 조업에 해상에서 엔진 끄고 ‘대기’

19일 군당국에 따르면 북한 선박은 지난 9일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항했다. 이튿날에는 동해 북방한계선(NLL) 북방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군에 합류해 위장 조업을 했다. 12일에는 오후 9시께 NLL을 넘었다. 13일 오전 6시께에는 울릉도 동방 30노티컬마일(55㎞) 해상에서 정지했다.

14일에는 삼척 동쪽 방향으로 2∼3노티컬마일(3.7~5.5㎞)까지 이동했다가 오후 9시께부터는 엔진을 끈 상태에서 대기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일출 이후 우리 어선의 입출항이 빈번해 해상 경계가 허술해지는 시점에 삼척항으로 접근했다. 이날 오전 6시20분 삼척항 방파제 인근 부두 끝부분에 접안했다.

북한 선원들을 발견한 건 오전 6시50분께 산책을 나온 주민이었다. 선원 4명은 인민복(1명), 얼룩무늬 전투복(1명), 작업복(2명) 차림이었다. 차림새를 수상하게 여긴 신고자는 이들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북한에서 왔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112에 신고했다. 북한 선원 중 2명은 방파제로 올라와 있었고, 그중 1명은 “서울에 사는 이모와 통화하고 싶다”며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군 조사 결과 북한 선원 4명 모두 민간인으로 1차 확인됐지만 구체적인 신분은 확인 중이다. 군 관계자는 “4명 중 2명은 최초부터 귀순 의도를 갖고 출발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NLL 넘어 사흘간 ‘자유 항해’

지난 15일 군경의 해상 경계를 피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삼척항 내에 정박한 북한 어선. 선박은 해군이 인수해 보관 중이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군경의 해상 경계를 피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삼척항 내에 정박한 북한 어선. 선박은 해군이 인수해 보관 중이다. /연합뉴스

국방부가 이번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커지는 것은 모순되는 설명을 내놓고 있어서다. 군당국의 설명을 종합하면 북한 선박은 NLL을 넘은 12일부터 사흘간 아무런 제지 없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북한 선박이 기동 능력을 상실한 채 해류에 따라 움직이는 바람에 탐지가 어려웠다는 이틀 전 군의 해명을 스스로 뒤집은 셈이다.

‘매뉴얼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군의 해명은 역설적으로 ‘애초에 매뉴얼이 문제라는 것을 방증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북한 어선이 NLL을 넘었을 당시 군은 평소보다 군함과 해상초계기, 해상작전 헬기를 더 많이 투입해 경계했던 사실이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지난달 말부터 오징어잡이를 하는 북한 어선이 NLL 주변에 많아져 동해 해상 경계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평소보다 경계 태세를 강화했음에도 북한 어선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평소에는 감시망이 더 심각한 수준이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군당국의 근무기강 해이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 목선 선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항로를 조사해 보니 아군 해상초계기가 4㎞까지 접근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북한 목선을 봤는데도 그냥 지나쳤는지 조사 중”이라고 했다. 해상에서 대기하던 북한 선박은 15일 새벽 군의 해안감시레이더에 최초 포착됐다. 하지만 감시 요원들은 포착된 표적이 움직임 없이 멈춰 있자, 파도로 인한 반사파로 간주하고 보고하지 않았다. 해양수산청과 해양경찰의 폐쇄회로TV(CCTV)에도 북한 선박의 움직임이 촬영됐지만, 북한 선박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야권 “정경두 장관 경질해야”

北 어선 표류했다더니…알고보니 '계획적 귀순'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9 전반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경계작전 실태를 꼼꼼하게 되짚어보고 이 과정에서 책임져야 할 인원이 있다면 엄중하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군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자유한국당은 남북한 군사합의 폐기와 정 장관 경질을 요구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안보를 군이 아니라 어민이 지키는 게 현실”이라며 “안보가 이렇게 무장해제된 것은 잘못된 판문점 선언, 잘못된 남북 군사합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방부 장관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백승주 의원은 “경계에 실패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와 국방부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철저한 신상필벌을 추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임락근/고은이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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