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계, 李여사 회고…"어머니 같은 존재"·"소탈하고 검소"
참모·손님에 밤낮 없이 손수 식사 대접…"아침은 미역국에 홍어"
'영원한 동교동 안주인' 이희호…"DJ 아내 넘은 정치 동반자"
"영원한 동교동의 안주인", "모두를 품는 따뜻한 어머니", "아내를 넘은 정치적 동지".
동교동계를 비롯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곁에서 정치 역정을 함께 걸어온 인사들은 10일 별세한 고(故) 이희호 여사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김 전 대통령을 따랐던 동료 정치인과 참모들은 이 여사가 모두를 품는 어머니 같은 존재이자, 김 전 대통령과 동교동을 뒤에서 묵묵히 떠받치는 정신적 지주와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동교동계 원로 이훈평 전 의원은 "동교동의 안주인 이 여사는 한마디로 어머님 같은 분이었다.

모두를 품어주시던 분"이라며 "이성과 지성을 모두 갖춘 영부인의 롤 모델"이라고 평했다.

윤철상 전 의원도 "항상 자상한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비서들을 대해줬다"며 "뿐만 아니라 주변 이들이 어려움을 겪으면 소리 없이 다가가 몰래 그들을 돕곤 했다"고 반추했다.

김 전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으로 '동교동의 막내'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도 "동교동을 드나든 사람 중 단 1명도 이 여사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며 "훗날 동교동계와 척을 진 인사들 조차 김 전 대통령은 욕할 지언정 이 여사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기억했다.

설 의원은 "이 여사는 늘 '조근조근' 말했지만, 그 말을 거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로 존경 받았다"며 "누구든 품고, 알아봐주는 분이었고, 사람을 절대 내치는 법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이 여사가 동교동을 찾는 김 전 대통령의 참모와 손님들을 위해 밤낮 없이 손수 밥을 지어 냈다고 추억했다.

윤 전 의원은 "누구든 동교동을 찾으면 몇시든 이 여사가 직접 음식을 해서 내어왔다"며 "아침에는 주로 미역국을 끓여줬고, 깍두기와 김치 등 '5찬'을 곁들여 내주곤 했다"고 전했다.

박양수 전 의원은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 참모·손님에게 동일한 음식을 내줬다"면서 "검소한 전라도식 식단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워낙 좋아한 까닭에 아침인데도 홍어와 구운 고기·생선이 자주 나왔다"며 이 여사의 밥상을 기억했다.
'영원한 동교동 안주인' 이희호…"DJ 아내 넘은 정치 동반자"
평소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는 이 여사도 식사 때 만큼은 평범한 부부 처럼 김 전 대통령을 향해 애정어린 '잔소리'를 건넸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을 따라 정계에 입문했던 문희상 국회의장은 "식욕이 왕성했던 김 전 대통령이 아침을 평소보다 많이 먹으려고 하면 이 여사가 바로 '건강을 생각해 조금씩 먹으라'고 제지했다"며 "두 분의 목소리가 커지는 유일한 때였다"라고 회상했다.

문 의장은 "김 전 대통령이 아침식사 자리에도 늘 의관을 완벽하게 정제하고 나오는 등 절제된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 여사는 머리카락에 '헤어롤'을 감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분"이라고도 전했다.

동교동 자택 곳곳에 묻어나는 이 여사의 검소함을 기억하는 인사들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장남 고 김홍일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민주평화당 김정현 대변인은 "이 여사가 워낙 검소해 동교동 자택 전등 스위치 중 절반은 누르지 못하게 테이프로 고정해두곤 했다"며 "오래돼 너덜너덜해진 응접실 소파를 계속 사용할 정도로 절약이 몸에 밴 분"이라고 전했다.
'영원한 동교동 안주인' 이희호…"DJ 아내 넘은 정치 동반자"
무엇보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배우자를 넘은 정치적 동반자로 기억됐다.

문 의장은 "김 전 대통령이 평화민주당 총재 시절 국회 당 대표 연설 때 참모들이 정리한 원고가 아니라 이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의 구술을 받아적어 육필로 정리한 원고를 갖고 들어가 읽던 것이 기억난다"며 "부부를 넘은 '일심동체'의 동지의 경지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설 의원은 "이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이 여사가 없었으면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여사가 지난 2008년 출간한 자서전 '동행'에서도 동지적 관계가 잘 드러난다.

이 여사는 자서전에서 '조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한 몸 바치겠다는 남편의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김 전 대통령을 독려하고, 네 차례의 대선 등 그동안 동지로서 함께 겪은 정치 역정에 대한 소회를 털어놨다.

국민의정부 '퍼스트레이디' 시절에도 단순한 내조에 그치지 않고 여성과 어린이 문제에 적극 힘을 쏟았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출신인 평화당 최경환 의원은 "이 여사는 단순한 '대통령의 내조자'가 아니었다"며 "특히 여성계의 지도자로서, 김 전 대통령에게 국민의정부 여성 정책에 대해 많은 조언을 했다"고 전했다.

이 여사는 2009년 김 전 대통령 별세 후에는 묵묵히 남편의 유지를 지켜나갔다.

최 의원은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 별세 후 건강 악화 전까지 6년 가까이를 한 주도 빼지 않고 동교동계 인사들과 김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며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맡아 김 전 대통령 추모 사업 등을 이끌며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뜻을 이어나갔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