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재해 추경에 500억 '공공 알바' 끼워넣기…한국당 "전액 삭감"
정부가 재해 예방 등을 위해 지난달 편성한 6조7000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 중 500억원을 투입해 ‘공공 단기 아르바이트(알바)’ 1만5000여 개를 만들 계획인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국립대 빈 강의실 불 끄기’ 등 정부가 작년 4분기 1200억원가량의 세금을 들여 급조한 5만9000여 개 공공 알바는 고용 지표 개선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

▶본지 2월 8일자 A1,3면 참조

그럼에도 단순 고용 숫자를 올리기 위해 이번엔 추경까지 동원해 비슷한 단기 일자리를 찍어내겠다는 것이다.

[단독] 정부, 재해 추경에 500억 '공공 알바' 끼워넣기…한국당 "전액 삭감"
알바 뽑아 미세먼지 배출 감시?

정부가 지난달 25일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에 따르면 재해 관련 부처인 환경부와 산림청은 추경으로 편성된 1조2803억원 중 500억원을 1만5225개 공공 알바를 만드는 데 쓰기로 했다. 환경부가 96억원, 산림청은 404억원이다. 모두 재해 예방 명목의 일자리다.

산림청 공공 알바가 하는 일은 크게 ‘숲 가꾸기’(편성액 218억원)와 ‘산림 재해 예방’(186억원)으로 나뉜다. 3151명의 숲 가꾸기 요원은 도심, 민가와 가까이 있는 숲을 돌며 낙엽, 솔방울, 덩굴 등을 줍고 뽑는 일을 맡는다. “산불 등 산림 재해를 일으키는 것들을 사전 제거하는 작업”이란 게 산림청 설명이지만, 정치권에선 “정부가 이런 허드레 일자리까지 세금을 들여 만들어도 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요원들은 6개월간 하루 8시간을 일하고, 일당으로 최저임금(시간당 8350원)에 해당하는 6만6800원을 받는다.

산림 재해 예방 요원들도 하는 일은 이와 비슷하다. 1만110명 규모의 ‘산불 전문 예방·진화대’는 이름과 달리 산불 끄는 일엔 거의 투입되지 않는다. 대신 숲 가꾸기 요원처럼 논·밭두렁에서 인화물질을 없애는 작업을 한다. 고용 기간은 단 한 달이다.

환경부는 산업단지 내 미세먼지 불법 배출을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알바 1000명을 뽑을 계획이다. 이번에 처음 만드는 일자리다. 채용 기간 6개월, 월급 200만원의 ‘감시단’은 산업단지를 돌며 미세먼지 불법 배출 업체를 잡아내는 임무를 맡는다. 환경부는 “단속 공무원이 부족해 감시 인력을 뽑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이들은 공무원이 아니어서 불법 배출이 의심되는 사업장을 찾더라도 단속할 권한이 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 자유한국당 의원은 “단속권도 없는 알바가 산업단지를 돌며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느냐”며 “결국 단속은 지방자치단체나 환경부 소속 공무원이 해야 해 이들은 2차 신고자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번 추경안엔 강원 고성군, 속초시 등 지난달 발생한 산불 피해 5개 지역에 ‘희망근로’ 일자리 2050개를 만드는 계획도 포함됐다. 업무는 공공시설물 개보수, 채용 기간은 6개월이다. 예산 규모는 지난해 추경 편성액(121억원)의 8배가 넘는 1011억원이다.

‘가짜 일자리’ 비판에도 꿈쩍 않는 정부

한국당은 “일자리 관련 본예산(올해 23조원)은 아직 다 쓰지도 않았는데, 추경까지 이런 허튼 데 쓰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국회 심사 과정에서의 대대적인 예산 삭감을 예고했다. 정용기 한국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문재인 정부는 통계상 일자리 숫자만 늘리는 식으로 국민 눈을 속이는 행태를 언제까지 계속할 거냐”며 “공공 알바 관련 추경은 전액 삭감하겠다”고 했다.

산림청은 작년 10월에도 산불 예방·진화대와 숲 가꾸기 요원 1335명을 뽑는 데 19억원의 예산을 썼다. 작년 하반기 취업자 증가 폭(전년 동기 대비)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위기에 처하자 정부가 꺼내 든 ‘5만9000개 맞춤형 일자리’ 사업의 일부였다. 당시 산림청 등 각 부처는 산하 공공기관을 총동원해 고용 기간 1~2개월짜리 초단기 알바를 앞다퉈 채용했다. 교육부는 국립대 빈 강의실 소등이 업무인 ‘에너지 절약 도우미’ 1000명, 중소벤처기업부는 전통시장 화재 점검원 377명, 해양수산부는 어촌 그물 수거 알바 869명을 뽑았다.

이 사업이 시행된 뒤 취업자가 반짝 늘기도 했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작년 11월 취업자 증가 폭은 16만5000명(10월 6만4000명)으로 늘었다가 사업 막바지인 12월엔 3만4000명으로 다시 쪼그라들었다. “세금을 써 기껏 ‘가짜 일자리’만 양산해 냈다”는 비판이 거듭 제기된 이유다. 그럼에도 산림청은 이번 추경을 통해 1만4000여 명의 공공 알바를 채용하겠다고 나섰고, 환경부는 기존에 없던 일자리까지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산림청은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 설명 자료에서 “숲 가꾸기 사업은 일자리 창출 속도가 빨라 취약계층에 신속하게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취약계층에 일종의 보조금을 나눠 주는 식의 일자리 정책은 수혜자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이는 결국 일손이 필요한 민간 고용 사정만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했다.

하헌형/김소현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