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대상 年매출 3000억→5000억 미만으로 확대
與, 가업상속 문턱 낮춘다

기재부에 요건 완화 요청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중소·중견기업인의 ‘상속세 폐업’과 이민을 막고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본지 5월 20일자 A1, 3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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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민주당에 따르면 당내 ‘가업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는 최근 기획재정부에 가업상속공제 제도의 매출 요건과 인력 유지 조건을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현행 3000억원 미만인 상속·증여세 감면 기준을 50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상속 후 10년간 고용을 100% 유지해야 하는 요건을 수정하자는 게 핵심이다. 가업상속공제는 매출 3000억원 미만 기업에 한해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제도다.

민주당은 상속 후 10년간 정규직 고용 인원을 100%(중견기업 120%) 이상 유지해야 하는 사후관리 요건에 인건비 총액 등을 함께 고려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업종 변경 범위도 한국표준산업분류상 소분류에서 중분류로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는 최근 가업상속공제의 사후관리 기간을 10년에서 7년으로 줄인다고 발표한 바 있어 대대적인 제도 개편이 예상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현행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대상 기업이 적고, 상속 후 업종과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까다로운 규정 때문에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고 설명했다. 가업상속TF는 당·정·청 협의를 거쳐 다음달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민주당 가업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이끌고 있는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 오른쪽은 조정식 정책위원회 의장.  /연합뉴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민주당 가업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이끌고 있는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 오른쪽은 조정식 정책위원회 의장. /연합뉴스

경기도의 한 공단에서 자동차 부품회사를 운영하는 A사장은 작년부터 자녀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한 뒤 주문 일부를 이 회사에 넘기고 있다. 자녀 회사가 본궤도에 오르면 본인 명의의 회사는 결손처리해 폐업시킬 예정이다. 새 회사에 일감을 옮겨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는 이른바 ‘모자 바꿔쓰기’ 수법이다. 가업 승계 컨설팅을 해준 B회계사는 “‘세금을 내려고 지난 30년간 젊음과 열정을 다 바쳐 일군 회사를 팔 수 없다’는 게 A사장의 생각”이라며 “현 제도하에선 편법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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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회사 매각·해외 이주 부작용 심각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가업상속공제 요건 완화에 총대를 멘 이유는 중소·중견기업이 최고 세율 65%(경영권 상속 때 할증세율 포함)인 상속세를 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멀쩡한 기업을 폐업하고, 투자를 줄여 이익을 낸 뒤 기업을 매각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아예 상속세가 없는 싱가포르 등으로 해외 이주를 결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민주당 가업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 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의 최운열 의원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신규 투자를 줄이는 사례가 많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소·중견기업의 불만은 한국의 가업상속공제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것이다.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10년 이상 운영한 중소기업 등의 원활한 가업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요건을 갖추면 상속세 산정 때 과세액에서 최대 500억원까지 깎아주는 제도다. 공제 대상에 포함되기도 어렵고, 상속 후에도 업종 전환 제한 등 현실 상황을 간과한 독소조항이 많다.

IBK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독일은 전체 기업 약 240만 개 가운데 2015년 2만4006개(1.0%)가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았다. 반면 한국은 약 350만 개 기업 중 91개(2017년 기준)로 미미한 수준이다. 500억원의 공제상한액이 설정돼 있지만 실제 건당 공제액은 2013~2017년 24억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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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공제 대상에 올라도 깐깐한 사후 관리 요건을 지키지 못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상속·증여세를 추징당한 기업은 2016년 6개에서 2017년 23개로 네 배가량으로 늘었다. 추징액도 같은 기간 7억원에서 76억원으로 열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충열 중견기업연합회 명문장수기업센터장은 “경영 여건 악화 속에 고용을 줄이거나 자산을 매각한 회사가 많아 추징 사례가 늘었다”고 말했다.

창업주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앞으로가 더 문제다. 창업주가 회사를 운영 중인 중소·중견기업 5만1256개 가운데 창업주가 60세를 넘은 회사는 1만7021개로 33.2%에 달한다. 하지만 승계를 완료한 기업은 전체의 6.6%(3426개) 수준이다.

시대 변화에 맞게 법 고쳐야

민주당은 우선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매출 기준이 현재 3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올라갈 경우 512개 기업이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게 된다. 매출 기준이 7000억원으로 상향되면 수혜기업은 738개로 늘어난다.

사후 관리 요건 중 ‘고용을 상속 후 10년간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도 손볼 계획이다. 현재는 상속 개시 과세연도 말부터 10년간 평균 정규직 근로자 수가 기준 고용 인원의 100% 이상, 중견기업은 120%를 유지해야 한다. 여당은 고용인원 유지와 인건비 총액 등을 섞어 새로운 고용 조건을 마련해달라고 정부와 중견기업연합회 등에 요청했다. 인건비 총액이 줄지 않으면 문제삼지 않도록 해달라는 취지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고용난으로 인력 충원이 쉽지 않은 중소기업이 많은 데다 스마트공장 등 설비 자동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며 “시대 변화에 맞게 법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상속 후 업종 변경 확대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라 가업상속기업은 소분류(232개) 범위 내에서만 업종을 바꿀 수 있는데 이를 중분류(77개)까지 넓힐 계획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 부품을 제조하는 회사가 앞으론 컴퓨터, 통신·장비, 영상·음향기기, 전자부품 등으로 업종 전환을 할 수 있게 된다. 사후 관리 기간도 10년에서 7년으로 줄어든다.

정부·청와대 반대가 변수

민주당은 조만간 청와대, 정부와 협의회를 열어 최종안을 만들 예정이다. 이를 위해 가업상속 TF 활동 기한도 다음달 말까지 두 달 연장했다. 바뀐 내용은 내년 세법 개정안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관련 내용을 보고 받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매출 요건 완화를 주장해온 중견기업연합회도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연합회 관계자는 “기대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이 정도 수준에서라도 빨리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회 측은 다음달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고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주요 인사를 초대해 설명회를 여는 등 여론조성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김 의원은 “기업의 기를 살리고 투자 심리를 바꿔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매출 요건 수정에 난색을 보이고 있어서다. 세수 감소 우려와 ‘부의 대물림’을 정부가 조장한다는 일부의 비판여론을 의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재부는 제도 개선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매출 요건 등에 손을 댈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시민단체 출신 다수가 포진해 있는 청와대가 가업상속공제 요건 완화에 반대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당 내부에서도 일부 의원의 반대가 있다. 유승희 민주당 의원은 가업상속 대상을 매출 30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공제한도를 50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축소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가업상속 TF 단장인 이원욱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중견기업연합회와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정부를 설득해 최종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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