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오른쪽)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오른쪽)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8년 만의 물리적 충돌 끝에 힘겹게 의결된 선거제 개편안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두고 벌써부터 미묘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개혁 입법이 후퇴했다는 내부 반발이, 야당에선 선거제 개편안을 그대로 통과시킬 수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1년여 앞둔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여야 5당 간 ‘디테일의 전쟁’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민주, 한국당 돌아오라 손짓

여당인 민주당은 추가경정예산(추경)안과 민생경제 법안 통과에 책임이 있는 만큼 조속한 시일 내에 자유한국당을 국회로 불러들인다는 전략이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3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패스트트랙 추진 법안의 처리 시점과 관련, “연말까지는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당에 대해서도 “국회로 돌아와 달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오는 8일 차기 원내대표 선출과 여야 대표·청와대 간 회동을 변곡점으로 국회 정상화의 손짓을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공식적으론 선거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경수사권 조정 등 패스트트랙 추진 법안 중 “우선순위는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내부적으론 대통령 공약 1호인 공수처 법안 통과에 주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 29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낸 공수처법 수정안은 민주당의 원안과 굉장히 큰 차이가 있어 받을 수 없다”며 “본회의 상정 시 우리 안을 우선 표결할 수 있도록 야당과 협상해달라”고 요구했다.

‘권은희 안’과 ‘민주당 안’을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것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한 수도권 재선의원은 “공수처의 기소권을 두고 바른미래당에 한 차례 양보했는데, 결국 막판에 또다시 후퇴해 ‘반쪽 공수처’가 됐다”고 비판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원안(지역구 225석·비례대표 75석)대로 통과해도 현 지지율 수준에선 크게 손해 볼 게 없다는 분석이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의석수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번 논의 과정에서 이른바 ‘패스트트랙 동맹’이란 범여권 연대가 형성됐다”며 “단독 과반이 아니더라도 ‘범여권 과반’은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야 4당은 선거제 두고 ‘동상이몽’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4법 가운데 선거제 개편안 통과를 막는 데 사활을 걸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은 지난 22일 패스트트랙 4법의 본회의 표결 순서를 ‘선거법→공수처법→검경 수사권 조정안’으로 정했다. 선거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이 민주당이 주도한 공수처법에 굳이 찬성표를 던질 이유가 없어진다. 한국당 관계자는 “선거법만 막으면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들이 모두 부결되는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이 될 것”이라며 “남은 기간 총력을 다해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전국을 권역별로 순회하며 선거제 개편 무효 선전전을 벌일 방침이다.

바른미래당은 이번 국면에서 당이 두 동강이 날 위기에 처했다. 당내 갈등 수습을 1차적 과제로 설정한 이유다. 다만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제3당의 존재감을 발휘했다고 보고 있다. 손 대표가 언급한 바른미래당을 중심으로 한 ‘제3지대론’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패스트트랙 정국을 주도한 만큼 선거제 개편안과 권은희 안의 원안 통과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평화당은 선거제 개편과 제3지대론을 함께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현 지지율이 1~2% 수준에 그쳐 의석할당 정당(정당득표율 3% 이상 득표한 정당)에 못 미치지만 신당 창당 등을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정의당은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의 가장 큰 수혜 정당이다. 현 지지율 수준인 10% 정도의 득표율을 올리면 교섭단체 요건인 20석의 의석 확보도 가능해 현재 6석보다 의원 수가 대폭 늘어나게 된다. 또 패스트트랙 법안 중 선거제 개편안을 본회의에서 가장 먼저 표결하기로 해 실리도 챙겼다는 분석이다.

김우섭/하헌형 기자 duter@hankyung.com